1984년 어느 달, 북한의 권력서열(power hierarchy) 표다.
당시 북한관련 영문저널인 <Vantage Point> 를 만들고 있을 때 두 달에 한번 씩 발간하던 특집책자 부록에 수록된 것이다.
지금은 어떨런지 잘 모르겠으나,
1980년대는 북한의 이런 권력서열에 관심이 많이 집중돼 국내외 언론사와 관련연구기관 등에서 정기적으로 이를 유지 관리해오고 있었다.
당시는 김정일이 1980년 10월 로동당 6차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국내는 물론 서방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후계권력관련 동향은 당 중앙위나 정치국회의 등에서의 그의 공식적인 출현 여부에 의지하는 바가 컸었다.
그러니까 당시 이런 권력서열 표를 유지한 것은,
이를 통해 물론 북한의 권력구조 변화를 점쳐볼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아울러 권력후계자인 김정일의 동향에 중점을 둔 측면이 많았다.
북한의 권력서열은 지금도 그렇겠지만 북한당국에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주요 당정회의에 참석하는 주요 면면들의 김일성을 중심으로 호명되는 순이나 앉는 자리에 따른 서열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래 참석하다 어느 시점에 나타나지 않고 그게 이어지면 숙청 등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그러니 보는 관점이나 시기, 행사내용 등에 따라 각각의 서열표가 만들어질 수가 있었는데,
언론사나 연구기관의 것도 있을 것이고, 정보기관의 것도 있었다. 이들 중 아무래도 대북정보에 밝은 정보기관의 것이 신뢰도가 높았다.
나도 물론 북한의 권력서열을 주시하면서 동향을 체크해오고 있었는데,
1984년 어느 달에 내가 만든 이 권력서열 표는 당시 대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김정일이 상당 기간 공석에 출현하지 않던 상황에서 내가 치고나가 김정일의 권력서열에 변동이 없다는 걸 주요 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권력서열 표로 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내가 만든 이 표가 정보기관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는 게 문제가 됐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 나는 정보기관의 조사까지 받았다.
오늘 우연히 옛 자료꾸러미에 나온 북한의 이 권력서열 표를 보니 새삼 권력과 인생, 세월의 무상을 느낀다.
김일성을 필두로 김정일로 이어지는 41명의, 당시 북한을 쥐고 흔들던 자들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이 36위로 나온다. 이 표를 만들면서 당시 나는 혹시 이런 생각을 해봤을 지도 모르겠다.
이 표에 나온 김일성을 위시한 41명이 일시에 사그리 없어진다면 한반도 자유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하지만 그 41명이 몽땅 사라져버린지 한참이나 됐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그대로인 걸 보면,
내 생각은 결국 헛된 망상이었음을 지금에사 돌이켜보니 헛된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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