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인사동 가는 길 쪽 옛 미대사관저가 헐리고 그 자리에 '송현공원'이 들어서는 등 이 지역이 많이 변했다. 궁금했던 건 그럼 옛 미대사관저 그 아래, 그러니까 사간동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동십자각 건너 편 출판문화회관이나 오래 된 사진관인 '란스튜디오'는 그대로 남아있을까 하는 나름의 우려섞인 궁금증이기도 했다. 그 쪽이 나로서는 옛 청춘의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광화문 프레스센터 나간 김에 확인을 했더니, 그것들은 '다행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1977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숙을 한 곳이 가회동이니, 이래저래 이 쪽 지역을 뻔질나게 오갔다. 그리고 1990년대 총리실과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또 많이 삐댄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그 때 거의 모든 만남의 약속은 출판문화회관 지하다방에서였고, 식사는 '란스튜디오' 뒤에 있던, 함박스테이크를 잘 하던 레스트랑에서 주로 했다. 마주앙 드라이를 곁들여 레스트랑에서 식사를 하다 술 생각이 더 나면 바로 길을 건너 청진동으로 가기가 일쑤였다.
사내결혼을 한 지금의 아내와 은밀한 데이트를 하던 곳도 바로 여기였다. 아내가 나온 성균관대 뒤 창경원으로 통하는 통로 쪽이 그 전 우리 만남의 장소였으나, 회사에 소문이 나면서 바꾼 곳이 사간동 그 쪽이었다. 근데 '란스튜디오' 뒤에 있던 그 레스트랑은 없어졌다. 거기를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많이 갔다. 술 못 먹는 아내더러 마주앙을 거의 '강제적'으로 먹이던 레스트랑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적잖게들 마시고 그 레스트랑을 나오면서 아내가 구토를 하길래 길가 어두운 구석에 주저 앉히고 아내 등을 두드려주던, 그런 추억도 있는 곳이다. 그 레스트랑은 1980년대 초, 내가 보안관련 사고로 정보당국의 미행을 받고있을 때 정보원을 따돌리기도 한 곳이기도 한데, 지금은 돌이키기 조차 끔찍할 정도로 나에게 그때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화문을 나가면 보게되는 게 이순신장군 동상이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매번 대할 적마다,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내가 무슨 특출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지만, 그래도 장군의 동상을 대할 때엔 그 순간이나마 나라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 측면에서 장군의 모습이 늘상 같은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지울 때와 나라가 그나마 안정스러울 때 보여지는 장군의 모습이 나로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순신장군 동상에서는 어떨 때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도 함께 투영되기도 한다. 장군의 동상을 광화문 한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이 세울 1968년 그 당시는 나라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라를 새롭게 건설하자는 국민적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시절 동상에서의 장군 모습은 나라를 격려하던 인자한 표정이었다.
그저께 모처럼 대한 장군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많은 수심에 잠긴 그런 모습이었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망쳐진 나라에 대한 걱정이 서려있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것 뿐이겠는가. 출범한지 6개월 남짓한 윤석열 정부에 이태원 참사 등 잇단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그럴 것이려니와, 갖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즉까지 거대 야당의 보호막 속에서 설쳐대고 있는 이재명을 어찌 처단하지 못하고 있는 등의 여러가지 실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여있는 모습이었다.
2011년 무척 추운 한 겨울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한 잔 걸치고 어둔 밤, 얼큰한 기분으로 광화문 거리로 나왔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온 장군의 동상, 그 때 장군 동상이 유난히도 빛을 발하면서 빛나게 보였다. 흡사 어둔 밤, 하늘에서 한 줄기 서광이 장군을 비추고 있는 형국이랄까.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장군 동상을 에워싸고뭔가 기도를 바치고있는 듯 했다. 나 또한 동상 앞으로 가 그 사람들과 합류해 나라를 위해 기도를 바쳤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긴 칼 손에 잡고 나라의 심장부인 광화문 네거리를 묵묵히 내려보고 있는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강열하게 전해지는, 나라에 희망과 서광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붉은 단심. 아울러 민초들 삶의 번영과 안정을 바라는 애민정신을 강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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