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기자시절의 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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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기자시절의 한 ‘추억’

by stingo 2022. 7. 19.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초짜기자 시절의 얘기다.
아침에 오늘은 뭘 쓸까하는 기사꺼리로 골몰하면서 출근하다 버스 안에서 어떤 포스터를 봤다.
당시 통일원 주최로 남북이질화와 관련한 사진 및 자료전시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면서 남북이질화만 저렇게 강조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진하던 시절이라, 통일을 위해서는 이질화 조장보다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으로 민족성을 회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출근해서도 머리 속은 그 포스터 생각으로,
저걸 어떤 형태로든 반박하는 기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쪽으로 대략적인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당시 정보당국에서 제공하던 비밀자료를 뒤지게 됐다.
귀순한 북한주민들의 증언을 모아놓은 말 그대로 생자료였는데, 거기에 놀랄만한 증언들이 가득했다.
예컨대 그때까지 우리가 배우기로, 북한에서는 이른바 반동행위와 관련해서는 아무리 집안 어르신이라 하더라도 보위부에 고발하는,
말하자면 인륜이 완전 무시되는 사회가 북한이라는 것인데, 이와 배치되는 내용의 사례를 비롯해
노인공경 등 우리들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북한사회와 주민들을 증언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 증언들을 토대로 단숨에 기사를 만들었다. 데스크에서 게이트키핑이 될 줄로 알았는데 내 기사는 그냥 그대로 나갔다.
오후 석간신문에 내가 쓴 기사가 크게 실렸다. D일보에 5단 박스를 비롯해 기타 다른 신문들에도 도배되다시피 했다.
결국 그 다음날 일이 터졌다. 통일원장관실에서 항의가 오고 난리가 났다.
그날 오후 퇴근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그날 저녁 남산으로 부장, 차장과 함께 호출돼 갔다.
부장과 차장이 먼저 불려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미 각오를 하고있었다.
부. 차장이 나오고 나더러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다.

그때까지 우리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높은 사람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보고 물었다. 어떡해서 그런 기사를 썼냐는 것. 나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평소의 소신을 얘기했다.
그 사람은 내 얘기를 경청하는 듯 했다. 내가 얘기를 끝내자 물었다.
기자 경력이 몇년 되느냐는 것. 1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싱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나더러 나가도 좋다면서 부장을 다시 들어오라 했다.
얼마 후 부장이 나왔고, 우리들은 무사히(?) 남산을 나올 수 있었다.
부장이 퇴계로 쪽으로 걸어나오면서 어디 가서 한잔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높은 사람이 같이들 어디가서 한잔하라며 술값을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들은 충무로에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세월이 얼마 흐른 후에야,
그날 남산에서 우리들을 만났던 사람이 당시 중정 심리전국장이던 L모 씨라는 걸 알았다.
그 분은 H일보 정치부에 있다가 중정으로 스카웃돼 갔다고 했다.
한 십여년 전, 모 세미나에서 뵐 기회가 있어 이 얘기를 했더니, 그래요? 하며 그냥 웃었다.
이즈음 페이스북에서 그 분의 글을 가끔씩 본다.
그 분은 까마득한 그 때의 그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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