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을 하면서 노트북을 처음 쓴 게 1992년 말부터이다.
그때 애플OS에 관해 1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매킨토시 파워북 145B를 썼다.
비쌌다. 전자신문 다니는 후배 덕으로 30% 디스카운트한 게 그 당시 거의 200만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값을 톡톡히 하는 노트북이었다. 성능이 MS 노트북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이를테면 해외에서의 기사송고를 전화모뎀에 의존하고있을 때인데,
이런저런 에러가 빈발했지만, 내 노트북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전화사정이 안 좋은 타시켄트에서 내 노트북으로
다른 기자들 기사 송고까지 해 줬을 정도였으니.
그걸 1997년까지 쓰고 그 후 회사에서 지급된 대우 노트북에 이어 지금은 삼성 걸 사용하고 있지만,
맥 파워북 노트북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남아있다.
오늘 문득 맥 파워북을 떠올리며 이 글을 적게 된 연유가 있다.
엊저녁 DVD로 옛날 영화인 '돌로레스 클레이븐(Dolores Claiborne)'을 보는데,
그 영화에 맥 그 노트북이 나오는 것이다.
캐시 베이츠가 분한 돌로레스의 딸 셀리나는 뉴욕 어느 신문사의 기자다.
엄마의 살인 의혹과 관련해 엄마가 있는 옛 고향으로 오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데,
셀리나가 서류 작성을 하는 한 장면에서 맥 파워북으로 일을 하는 게내 눈에 포착된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키보드 아래 동그란 볼이 마우스 역할을 하는 '트랙 볼(track ball)'인데,
저 장면의 트랙볼을 보고 나는 셀리나의 노트북이 맥 파워북인 것을 알았다.
영화에 푹 빠져있던 나는 그게 되게 반가웠다.
그래서 저 장면을 다시 한번 보려 DVD를 오늘 또 돌려보면서 그 장면을 찍은 것이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90년 대 초다.
애플이 만든 맥 파워북이 출시돼 한창 인기를 끌고있을 무렵이고,
그 당시 미국 유수 언론의 기자들 대부분은 그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있을 때였다.
나 또한 그 시절에 한창 기자생활을 하고있을 무렵이었으니,
기자로 나오는 영화 속의 셀리나와 거의 동시대, 동업적인 인연이 있는 셈인데,
그에다 맥 파워북까지로 이어지니 나로서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다.
그때 썼던 나의 맥 파워북 노트북은 지금은 내 수중에 없다.
몇년 전 수집하는 사람이 애원하는 바람에 줘버렸다.
나에게 맥 파워북과 관련해 남아있는 건,
내 기사가 저장된 한 무더기의 플로피디스크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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