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결말이 대개 좋지않다. 그리고 슬프다. 사랑은 이를테면 손뼉과 같은 것이어서
양 손이 잘 마주쳐 소리가 잘 나면 사랑이 이뤄지는 것인 반면 그게 때로 이런 저런 형편상 엇갈려 소리가 나지않는 경우 파토가 되는 양단의 것인데,
후자가 짝사랑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짝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러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찌 보면 그 중간 형태의 짝사랑도 있다. 어제 그런 짝사랑 얘기를 들었다.
바로 미모와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왕년의 인기여가수 박재란의 ‘짝사랑’이 그런 게 아니었던가 싶다.
가수 박재란은 1938년 생이다. 그러니까 올해 85살이다. 그 박재란이 어제 TV에 나와 ‘짝사랑’ 얘기를 하고있다.
아름답고 젊고 노래 잘 부르는 여가수였으니, 85살에 이르러서도 그런 사랑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박재란이 설마 시방 그 나이에 짝사랑이라니 하며 봤더니 그러면 그렇지 지나간 옛 시절의 얘기다.
그것도 짝사랑을 했다는 게 아니라 느닷없는 짝사랑을 당했다는 것이고 꿈같으면서도 허망(?)한 결말을 맛보았다는 얘기다. 박재란 씨는 자신의 왕년의 전성기 시절을 얘기하는 가운데 자신을 짝사랑한 당시 한 해병대군인의 얘기를 털어 놓았는데 얘기인즉슨 이렇다.
어느 날 지방공연차 대구를 갔는데, 쇼 막간에 무대 뒤로 어떤 초로의 아주머니가 박재란 씨를 만나겠다고 통사정하며 찾아왔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만나기를 청한 것인데, 만나자 이 아주머니 하는 말이 다짜고짜
해병대군인으로 복무 중인 하나 뿐인 아들이 다 죽게 생겼다는 것.
박재란 씨는 그게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며 그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 왈, 자기 아들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데 당신을 짝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위중한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한가지 소원을 말한다.
이도 저도 아니고 딱 한번 우리 아들을 만나 얼굴 한번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게 상사병으로 병석에 누운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이다.
박재란 씨는 짝사랑이기도 하고 생면부지의 청년군인이었지만,
그 아주머니의 청이 하도 간절하게 들렸길래 이를 매몰차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찾아가 그 군인을 만났다.
그 군인아들이 바라던 바 그대로 그냥 만나 얼굴만 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 군인아들은 거짓말처럼 얼굴에 화색과 생기가 가득한 채 고맙다는 인사를 거푸 했고,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본 어머니 또한 큰 절이라도 할 듯이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그 후 그 청년군인은 곧 바로 퇴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떠나간 그 청년군인의 소식은 일절 전해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박재란 씨는 이 얘기를 하면서 자신을 짝사랑한 그 해병대군인이 그렇게 잘 생기고 매너가 바를 수가 없었다며
당시 그 청년군인과의 만남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리는 듯 했다.
그러면서 그 후 그 군인이 어떻게 됐는가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 속에서 어떤 아쉬움같은 게 느껴졌다.
https://youtube.com/watch?v=ThEL7Z5L0W0&si=EnSIkaIECMiOmarE
짝사랑에 관련해 지금은 고인이 된 어떤 분의 아주 슬픈 얘기를 하나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박재란 씨의 이 짝사랑 얘기가 뭐랄까, 사랑으로 인한 환희와 슬픔, 그리고 그도 저도 아닌 그런 감정의 교류와 엇갈림이
결국은 느끼기 나름의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면서 한편으로 사랑이라는 게 어찌보면 참 싱거운 놀음이라는 생각에 닿게한다.
이건 내가 나의 아내와의 반세기에 이르는 이른바 사랑을 그런 식으로 보고있는 것에 어떤 확신감을 더하게 한다.
https://youtube.com/watch?v=nn4d-1OOwkw&si=EnSIkaIECMiOmarE
지금도 나는 뽈 모리아 악단 연주의 ‘이사도라’를 들으면 그 사람 생각에 자물시듯 빠진다.
1973년 8월의 어느 장마비 내리는 밤, 전방사단 어떤 OP 벙커 속에서 그는 ‘이사도라’를 크게 틀어놓고 들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독한 짝사랑을 견뎌내지 못한 결말이었다.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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