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을 오랜 만에 본다. 그것도 정규방송이 아닌 유튜브에서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대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많이 늙었다. 하기야 1945년 생, 우리 나이로 거의 팔십에 가까우니 그럴 만도 하다.
서유석이 김흥국과의 대담에서 이런저런 흘러간 얘기들을 나누는 것을 건성으로 듣다가 사뭇 귀에 감기는 얘기가 있었다. 그의 데뷔 전 명륜동 '카사노바' 시절의 얘기다. 카사노바는 1970년대 초 명륜동 성대입구, 그러니까 명륜극장 옆에 있던, 지금으로 치면 라이브 카페인데. 당시 대학생을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던 꽤나 분위기가 있던 주점이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인근에 하숙을 하고있어서 그 집을 많이 드나들었고, 가끔씩 무대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러니까 그 시절이면 서유석이 카사노바에서 지배인을 하고있을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다. 서유석은 카사노바에서 지배인을 하다 우연히 그 집에 들린 구봉서와 서영춘을 만난 것을 계기로 가수가 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아무튼 그 때를 전후해 카사노바에 가면 서유석을 볼 수 있었다. 나도 한 두어번은 만나 얘기를 나눈 기억이 있고, 우리들의 청에 의해 무대에서 그는 기꺼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때 주로 팝과 포크송을 불렀는데, 나중에 개사해서 크게 히트를 친 한 노래가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으로, 서유석은 이 노래를 아주 잘, 그리고 많이 불렀다. 말하자면 밥 딜런의 이 노래가 가수 서유석을 있게 한 것이다고 나는 생각한다.
카사노바가 언제까지 명륜극장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1973년 입대해 그 해 겨울 첫 출장을 나왔을 때 후배들이 환영연을 그리고 귀대할 적에 송별연을 베풀어 준 곳이 바로 카사노바였기에 그때까지는 분명 명륜동에 있었다. 내가 카사노바에서 서유석을 마지막으로 본 날도 바로 내가 귀대하던, 눈이 펄펄 내리던 1973년 11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군복 차림으로 그때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물론 서유석으로서는 나에 대한 이런 기억을 하고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오늘 유튜브에 나와 카사노바 시절의 얘기를 회상조로 하니 나 또한 잠시나마 추억에 젖게하는 계기가 됐다. 사족삼아 덧붙인다면, 눈이 펄펄 내리던 귀대하던 그날 불광동에서 잔뜩 취해 버스를 타고 파주 광탄의 부대로 가면서 나는 탈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좌절됐다. 후배들이 그 다음 버스를 타고 나를 따라와서는 거의 강제적으로 부대로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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