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죽는 영화는 슬프다. 이른바 ‘비극 물’이라는 영화가 대개 그렇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러면 더 그렇다. ‘러브 스토리’는 얼마나 많은 청춘남녀들의 심금을 울렸던가. 거짓말 좀 보태 엉엉 울며 본 영화가 있다. 1970년인가에 나온 홍콩영화 ‘스잔나.’ 여 주인공이 무슨 뇌종양인가 하는 병으로 죽는 줄거리의 영화인데, “씨양 조-치부...”라며, 지는 석양을 자기 운명에 빗대 노래 부르며 죽어가는 장면에선 온 객석이 눈물바다를 이뤘다.
전쟁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곧 잘 죽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 밀러 대위 역의 톰 행크스도 그 한 예다. 슬프고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애정영화에서의 그것처럼 애간장을 태우지는 않는다.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맞이하는 죽음이라서 그러한가. 그래서 이 영화는 ‘비극 물’이 아니다. 그냥 전쟁영화다.
비슷한 전쟁영화이지만, 마지막 장면이 애간장을 태우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가 있다. ‘새벽 작전(Operation Daybreak)'라는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의 7인‘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다. 1975년 체코와 미국이 공동으로 제작했으며, 1979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됐다. 영화는 1942년 나치독일에 저항하는 젊은 체코 특공대원과 레지스탕스들의 투쟁과 사랑, 그리고 고뇌를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의 원작은 앨런 버제스(Allan Burgess)의 소설 '7인의 새벽(Seven Men at Daybreak).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부터 우선 얘기하자. 슬픈 전쟁영화라는 이 글의 콘셉트에 맞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고 압권인 부분이다. 퇴로가 없는 마지막 은신처인 성당의 지하묘지. 동료들이 모두 죽고 둘만 남은 주인공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얀(Jan)과 조제프(Jozef). 차오르는 차가운 물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껴 앉는다. 권총을 상대의 관자놀이에 서로 겨눈다. 그리고 탕, 탕. 그리고 지하실 환기구로 흘러들어와 이들을 비추는 한 줄기 새벽 햇살. 나치독일에 대항해 싸운 젊은 레지스탕스를 그린 영화는 꽤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마지막 장면이 극적인 영화는 드물다.
관객들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 전율하고 감동한다. 특히 차 오르는 물속, 서로 꼭 감싸 안은 둘의 마지막 모습을 서서히 빙빙 돌려가며 움직이는 카메라 기법. 두 젊은 레지스탕스의 청춘과 생명은 원을 그리듯 그렇게 빙빙 돌며 사그라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는 1942년 체코를 점령한 나치독일의 주둔 사령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죽이기 위한 영국과 체코 망명정부의 작전에 투입된 7명의 젊은 체코 특공대원과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다룬 것으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앨런 버제스(Allan Burgess)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실패한 이들은 마침내 그 해 5월 27일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은신을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숨어든 곳이 프라하 중심부에 있는 ‘키릴 메쏘디우스 대성당(Cyril and Methodius Cathedral).' 여기서 이들은 프라하 탈출을 기도한다.
하이드리히를 잃은 나치독일의 보복은 잔인했다.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오른 팔이었다. 히틀러는 범인들을 반드시 생포할 것을 엄명한다. 프라하 시 전체가 이 잡듯이 뒤져진다. 별 진전이 없자, 무차별적인 보복이 자행된다. 은신처로 추정한 리디체(Lidice)라는 마을이 그 대상이었다.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 마을 자체를 없애 버린다.
성인 남자들은 모두 학살됐으며, 여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진다. 1만 3천여 명이 체포돼 갖은 고문과 처형을 당하는데, 5천 명 이상이 처형된다. 이는 나치독일의 체코양민 학살의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돼 있다. 그래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나치는 거액의 현상금까지 건다. 이런 과정에서 밀고자가 나온다. 동료 대원이었던 카렐 추르다였다.
6월 17일. 성당이 포위되고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 날 몇 명의 대원이 사살되고 마지막 남은 얀과 조제프는 지하묘지로 숨어들어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벌인다. 다음 날 새벽, 독일군은 ‘익사 작전’을 전개한다. 프라하 시내 모든 수도전의 물을 끌어 넒은 지하묘지에 부어 넣는 작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둘은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독일군의 작전은 실패로 봐야 한다. 둘은 익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나치독일과의 전쟁에 직면한 젊은 체코 특공대원과 레지스탕스의 투쟁을 그리고 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젊은 청춘들로서 가질 수 있는 사랑과 고뇌의 장면도 간간히 나온다. 연출을 맡은 루이스 길버트(Lewis Gilbert) 감독도 실화가 존재하는 이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까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전쟁과 투쟁 쪽에 초점을 뒀었다면, 하이드리히가 저격돼 죽어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엔딩 마크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버트 감독은 젊은 체코 특공대원과 레지스탕스들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이들의 조국에 대한 희생정신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 슬픈 전쟁영화 ‘새벽의 7인’으로 재 해석돼 나온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얀 역은 티모시 보텀즈, 조제프는 앤서니 앤드류스, 추르다 역은 마틴 쇼가 맡았다.
이들의 은신처였던 ‘키릴 메쏘디우스 대성당’은 프라하의 명소가 됐다. 성당의 지하묘지 통로 입구에 이들 대원의 흉상이 부조돼 있고, 그 앞에는 항상 꽃이 놓여있다. 당시 이 성당의 주교였던 고라즈는 나치독일에 의해 고문 끝에 처형됐고 후에 성인으로 추대된다. 밀고자 추르다는 1947년 반민족행위자로 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이드리히를 죽인 체코 망명정부의 이 작전으로 인해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다. 체코 망명정부와 망명군대가 그 지위와 권리를 인정받아 전쟁 중 나치독일의 수중에 있던 수데텐란트를 전후에 체코가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를 본 게 1979년 10월 말쯤이다. 아마 서울의 단성사 극장이었고, 마지막 상영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할 수가 없었다. 10월의 끝자락, 그리고 어두운 가을밤이었다. 휑한 가을바람에 낙엽은 흩날리는데다 영화내용까지 그랬으니.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게 또 하나 있었다. ‘10. 26 사태’가 그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래서 더 허전하고 암울하고 쓸쓸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40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가을이면 이 영화가 문득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
'colle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톨릭 神父들의 性추문을 폭로한 '스포트라이트(Spotlight)'라는 영화 (1) | 2022.11.18 |
---|---|
우크라이나의 ‘산에 혼자 사는 여자’ (0) | 2022.11.06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in 1961 (0) | 2022.10.24 |
추억의 일본 엔카 두 곡 (1) | 2022.10.06 |
타자기 斷想 (0) | 2022.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