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역시 라디오다.
잡다한 음향.영상기기들이 많지만 이제 그런 건 거들떠 봐지지 않는다.
손에 딱 잡히는 거리에 있고, 조작이 간편하고 잘 들리기만 하면 된다.
보는 것도 귀찮고 그냥 가만히 소파에 기대앉아 비몽사몽 경계가 모호하게 들려지면 된다.
음악소리도 예전에는 좀 까다로웠는데 이즈음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건 있다. 음질이 칼칼하고 매끈한 것 보다
좀 묵직하면서도 스크래치가 좀 낀 게 좋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아날로그적인 소리가 좋다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코맹맹이로 멜랑꼬릴리하게 들려지는 쪽으로 감성이 기운다.
그러니 그런 쪽의 라디오를 찾게됐고 그리하여 몇년 전에 구입한 게
텔레풍켄(Telefunken)의 ‘마그네토폰 파티사운드 R201’이다.
카셋테이프 겸용의 이 라디오가 이즈음 내 기호에 맞게 잘 따라주고 있는 게
한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fm이 잘 안 잡혀 애를 태웠는데,
웬일인지 이즈음은 아주 잘 잡히고 소리도 좋다.
KBS 1FM이 서울이 아닌 춘천방송의 것으로 잡힌다.
이상한 것은 라디오의 안테나 중간 부분이 끊어질 정도로 파손이 된 것을
테이프로 간신히 이어 붙인 이후로 라디오가 잘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로 언제 안테나가 주저앉을 것 같은
조바심에 한 두어번 매만져주곤 한다.
오늘 아침 불당골을 내려 와 집으로 오자마자 라디오을 켰을 때,
마침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멜랑꼬리끄(Melancolique)’가 나오고 있어
옷을 그대로 걸친 채 그 곡을 소파에 앉아 들었다.
마음이 멜랑꼬릴리해지면서 그 음악을 들려준 라디오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이 라디오를 구입한 게 2016년 10월이다. 그렇지, 이름이 생각난다.
체코의 쿠츠네초바 마리오(Kuznetsova Marina), 나에게 이 라디오를 판 아줌마다.
생각난 김에 그때의 메모를 찾아보니, 그 아줌마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가 나온다.
상업적이면서도 정감이 배어있는. 오늘 한번 검색을 해봐야겠다.
이 아줌마가 아직도 이베이 셀러로 활동하고 있을까.
“… It's our top priority to ensure your satisfaction as a buyer,
so feel free to email us if you have any further questions.
Also be sure to check out some of our other items! from Kuznetsova M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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