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Thinkpad 600.
이십 수년 전의 랩탑을 어제 창고를 뒤져 꺼내 본 건 한 유튜브 채널 때문이다.
이 구닥다리 노트북에 윈도11을 장착해 쓰는 것이 실로 경이로웠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나서 꺼내 켜 봤더니 제대로 가동될 리가 없다.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다. 리튬밧데리가 여분을 포함해 2개나 있었다.
밧데리를 바꿔 켜도 잠시 전원이 들어왔다가 “퓽-”하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오늘 새벽 잠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밧데리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밧데리를 빼고 전원을 연결해보자. 과연 그랬다. 전원이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IBM 이 랩탑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건 2001년인가 였을 것이다.
한창 바빴던 그때, 켜보니 전원이 들어오질 않아 그냥 고장이 난 것으로 쳐박아뒀던 것인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고장 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그걸 이십 수년 만에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원이 들어온다고 해결된 것은 아니다.
추억의 윈도98이 좌-악 펼쳐지기는 했지만, 그 후부터 에러 메시지가 계속 뜬다.
그리고 한 단계 씩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느리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이십 수년을 그냥 방치해 놓았었기에 그게 풀리려면 지금의 부팅 속도 개념이 어디 가당찮겠는가.
랩탑을 일단 끄고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 중이다.
어제 본 그 유튜브 채널에 문의를 한번 해볼까하는 걸 포함해서다.
나의 이 IBM 싱크패드 랩탑은 사연이 많다.
이걸 2000년 초반에 구입한 것은, 당시 언론재단의 미디어교육 e-learning과 관련한 한 프로젝트 일을 하면서
원고작성의 용도로 이베이(eBay)에서 얼추 300달러에 낙찰돼 구매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받아보았더니, 문제가 있었다. 패스워드에 걸린 것이다.
의사라는 미국의 구매자에게 패스워드를 알려달랬더니 미적거리며 도통 알려주질 않는다.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뭔가 부정스런 기미가 느껴졌다.
당시 이베이 결재회사가 아마 Billpoint였던 것 같은데, 거기에 분쟁(dispute)을 걸었는데
용케 받아져 얼마 후 결재한 대금은 전액 돌려받았다.
구매자는 그럼에도 반품요구를 포함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로 미루어 판매자가 부정취득한 물품이라는 걸 조사를 통해 결재회사에서도 알아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나는 이 랩탑을 공짜로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러면 뭘 하나 패스워드를 모르니 랩탑을 열 수가 없는데.
IBM 컴퓨터의 보안도 지금의 애플만큼이나 세다.
당시 IBM에 부장으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으나 풀 수가 없다고 했다.
알아보니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풀 수 있다고 해서 인터넷에 이 사안을 올렸더니, 거기 어느 곳에서 연락이 왔다.
들고갔더니 풀 수는 있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했다. 25만원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공짜로 들어온 것 아닌가. 그래서 25만원을 주고 패스워드를 풀었다.
그렇게 해서 딱 한 3개월, 원고작성 작업을 이 랩탑으로 한 것이다. 그러고는 그 후 그냥 쳐박혀있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IBM Thinkpad 600은 단종된지 오래됐다.
1998년 첫 출시됐을 때만 해도 당시 랩탑으로서는 최강이었다.
단종된지 오래됐기에 그렇겠지만, 이 랩탑이 지금은 호사가들의 컬렉센 아이템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내 것은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다. IBM Thinkpad 600 시리즈의 당시 특장은 기능도 그렇지만,
특히 키보드를 꼽는 사람들이 많앗다. 타이프세팅 시 싱크패드 특유의 오밀조밀한 끈적거림이 그것이다.
그에 더해 키보드 한 가운데 빨간 외로운 섬 같은,
지금의 커서 역할을 하는 ‘빨콩‘ 또한 당시 유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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