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1973년
본문 바로가기
masan(馬山)

마산, 1973년

by stingo 2023. 1. 4.
귀하고 정다운 사진 한 장을 접한다. 여기 페이스북 어떤 분이 포스팅한 것인데, 1973년 마산 창동의 모습이라고 했다. 마산이 고향인 나로서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저 창동거리를 무수히 오갔다. 거리의 간판들, 예컨대 상업은행, 파초여관, 피어리스, 영광당 등도 낯익은 것이다.
 
상업은행 위 4층건물이 황금당이다. 1960, 70년대 마산이 전국 7대도시였을 때 전국적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금은방이다. 저 집 5형제들 중 4째 진이가 내 절친이었고, 그 아래 막내 경이가 두 해 후배였는데, 둘 다 일찍 세상을 떴다. 저 황금당 4층에서 1964년 도꾜올림픽을 생전 처음 텔레비전으로 본 건 친구 덕분이었다.

 

 
황금당 맞은 편 골목 입구에 불고기로 유명한 '나이롱 식당'이 있었다. 그 집 아들 승인이는 식당 이름을 따 '나이롱'으로 불린, 역시 나의 동기고 친구다. 영광당 딸래미도 내 국민학교 동기이고 그 아래 *미양행은 아마도 취미양행인 듯 한데, 그 집 아들 또한 내 동기친구다. 파초여관은 마산을 방문하는 정치인 등 유명인들이 묵어가는 곳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저 집 아들이, 나는 이철수라는, 시방 김포에 살면서 이따금 씩 일산으로 와 나와 소줏잔을 기울이는 후배인 줄로 알고있었는데 이 사진 덕분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사진을 그 후배에게 "너거 옛집이 보인다"면서 보냈더니 바로 잡아줬다. 자기 집은 파초여관이 아니라 동양여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진이 1973년 창동의 모습이라는 게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그 때 전국7대의 마산은 크고 번성한 도시였다. 그 마산의 최고 중심가가 창동이었는데, 사진 속 창동은 도로도 울퉁불퉁하고 구루마와 자전차도 지나다니는 게 어째 좀 후줄근스럽다. 아울러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차림도 촌스럽기 짝이 없고. 그에 더해 그 당시라면 거리에 있어야 할 간판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
 
상업은행 위 아래 어딘가에 있었어야 할 '학문당' 책방과 상업은행과 영광당 사이에 있던 '미송모사'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리고 피어리스가 언제 적 화장품인가.
 
그러니까 이 사진은 1973년 창동의 모습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0년대 중반에 찍은 사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사진을 고향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친구들도 한결같이 그런다. 1973년의 창동거리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