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이란 어찌보면 대단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침 햇살 속에 사그라지는 새벽이슬처럼 그저 부질없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삶이기에 한 사람의 삶이 전 우주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붉게 사위어가는 노을 속을 날라가는 한 마리 외로운 기러기일 수도 있다.
아침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접한 한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전영애라는 분의 삶이다. 경기도 여주의 한 시골마을에 혼자인 듯 하면서도 여럿들과 공동의 삶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꿈을 느릿느릿하게 가꿔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 분은 자신의 시골 거주공간을 옛 것을 되새기게 하는 ‘書院’으로 꾸려 그 것을 정성스레 가꾸고 살아가는 모습이, 일생을 관통해 공부한, 아니 지금도 하고있는 자신의 서구적 취향의 학문과 묘하게 빗대진다. 그래서인지 좀 이채롭기도 하면서 신선한 공감을 안긴다.
전영애 이 분은 물론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지금은 그 대학의 명예교수 직함을 갖고있는 분이다. 따라붙는 수식어도 묵직하다. 독일이 인정한 ‘괴테 문학의 세계적인 연구자‘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 분은 독일문학을 전공했고, 그 중에서도 詩聖으로 일컬어지는 괴테와 그의 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있으니 가히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라해도 손색이 없다. 이런 분이 서울대교수라는 지위를 벗자마자 훌훌 털고는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마을로 내려와 터를 잡아 농부처럼 여기를 가꾸면서 한편으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 교수는 서원이 들어선 3천여 평의 넓은 땅을 혼자 가꾸다시피 했다. 서원의 한옥은 물론이고 넓은 정원의 꽃과 수목 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 가꿨다. 보기에 서원 어디어디에도 전 교수의 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야무지고 아름답게 가꿔 놓았다. 꽃과 나무들 마다에도 사연이 서려있다. 이를테면 서울대 교정 한 구석에 시들시들 말라 죽어가는 화초와 나무를 눈여겨 봐놓았다가 이들을 한아름 서원에 가져다 싱싱하게 살려낸 것들이 그것이다.
서원 이름을 빠뜨렸다. ’여백(如白),‘ 그러니까 ’여백서원‘인데, 이는 작고한 부친의 호로, 백짓장처럼 순백한 삶을 살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여백서원‘ 곳곳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신을 엿보이게 하는 글씨 등이 사뭇 시선을 끌게한다.
경북 내륙지방의 엄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 학교 문턱에는 가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그래서인지 생전에 홀로 배우고 익히는 공부에 유난히도 목말라했다고 한다. 혼자서 익힌 언문으로 어머니는 글짓는 걸 좋아해 적잖은 규방가사를 지었고, 이를 일일이 한자 한자 적어내려간 필사본을 남겼다. ’如白書院'‘으로 들어서는 한옥 초입에 전 교수 어머니가 필사로 남긴 긴 두루말이 한지의 규방가사 한 편이 천정아래 길게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전 교수는 매일 매일 어머니의 이 글씨를 대하면서 공부에 대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1951년 생 토끼띠, 그러니까 올해로 72살이다. 일흔을 넘긴, 결코 적지않은 나이지만 생긴 모습이라든가 말하는 행색이 흡사 앳되고 호기심 가득한 소녀같다. 그러니 세상물정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그러한 것이라면 전 교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전 교수는 평생을 괴테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의 학문적 성취도 예사롭지 않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했고 뮌헨대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괴테 연구자들에게는 노벨상과도 같은 독일의 ‘괴테 금메달’ 수상자이기도 하다. 저서도 많이 남겼다. 지금도 그는 매일 매일 공부하고 글을 쓰는 학문인으로서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혼자서 서원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텔레비전에 소개되고 있는 전 교수의 모습으로 보자면 학자보다는 농부에 가깝다. 정원과 수목을 매일 매일 가꾸는 일은 여자 혼자의 몸으로 결코 쉽지않을 것인데, 전 교수는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궂은 일하는 모습도 앳된 호기심에서 발동된 것으로 하는 양 재미있고 아기자기해 보인다.
전 교수는 ’여백서원‘을 자신의 공간 만으로 여기질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공동체적인 서원으로 가꾸고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서원은 활짝 문을 연다. 서원을 만인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 날이면 나이에 구애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원을 찾는다. 그리고 전 교수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도 부르고 토론도 한다. 전 교수는 서원을 누구든 와서 함께 얘기하고 즐기고 공부도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태어지는 전 교수의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그러니까 전 교수더러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할 영역을 제공한 괴테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그 일환으로 전 교수는 여기 ’여백서원‘에 괴테를 위한 각양의 공간을 조성하는 일을 추진 중에 있다. 서원에는 ’괴테 길‘ 등을 비롯해 이미 괴테와 관련한 여러 테마의 시설들이 조성돼 있는데, 전 교수는 어느 누구든 괴테를 알고 괴테와 소통할 수 있는 시설들을 가꾸고자 하는 것이다.
길이 좀 길어졌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째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사람의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 것인지를 전 교수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 교수와 나는 1951년 생 동갑이로구나.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전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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