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막 돌아와 라흐마니노프 2번을 듣고 앉았으니 그 선율이 만감을 젖게한다.
세상을 기웃거리고 사는 게 희로애락이라는 네 음절의 말로 웅떵거릴 수도 있을 것이나,
나이가 들 수록 喜樂보다는 怒哀 쪽의 두 음절로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세상은 고난의 바다라는 말이 그러니 맞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소식을 듣고 찾아가 오랜 만에 보는 장모님은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처남이 안고 화장실을 가다 장모님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누워셨는데,
정신줄마저 거의 놓고있는 상황에서 그저 어, 어 하시며 팔을 허공에 저으실 뿐이었다.
장모님은 다리 한 쪽이 없다. 하필 그 쪽 부위에 멍이 시퍼렇게 든 게 골절이 있었을 것이니,
그 통증이 오죽할까.
병원에서 진단이 나왔다 고관절 골절이다. 수술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주사와
약물요법의 처방으로 보아 그저 통증을 없애는 쪽으로 만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서 X-레이 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40여년 전 어느 날의 장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연세대병원 암센터 수술장. 그 날 새벽 장모님은 골육종으로 한 쪽 다리를 들어냈다.
피아니스트였던 장모님으로서는 거의 치명적일 지경이었다.
그 날 수술실에서 나와 응급실로 옮겨지면서 내 눈에 들어왔던, 덮고있던 담요의
다리 한 쪽 부분이 움푹 꺼져있던 모습. 망연자실해 하는 장인을 보필하느라 경황이
없었지만, 나에게 그 모습은 장모님을 떠올리는 잊지못할 하나의 장면으로 각인돼 있다.
장모님은 그래도 꿋꿋하셨고 피아노를 끝까지 지켰다. 그 몸으로 대학원
그레고리안 챈트 연구에다 미국 유학까지 하셨고,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도 계속하셨다.
그러는 사이 아내 병수발을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던 장인 어른이 먼저
세상을 뜨셨지만, 장모님은 생활면에서 부지런하고 정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앙심도 무척 강했다.
오늘 장모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하지만 내가 허공을 젖는 장모님 손을 꼭 잡았을 때,
시선이 내 쪽으로 멈춰지면서 한 순간이나마 계속 나를 응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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