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기들과의 창덕궁 탐방, 그리고 낙원동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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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동기들과의 창덕궁 탐방, 그리고 낙원동의 추억

by stingo 2023. 10. 14.

어제 고교동기들과의 창덕궁 탐방.
어언 70줄 나이에 든 우리들 처지로서는 여러모로 합당하게 어울리는 좋은 나들이다.
나로서는 몇십년 만의 창덕궁이라 그런지 창덕궁에서의 가는 곳마다에 옛 추억이 떠올랐다.




옛날 성균관대에서 창덕궁 후원인 비원으로 통하는, 아는 사람만 아는 통로가 있었다.
1978년인가, 다니던 옛 회사 사무실이 창덕궁 맞은 편 원남동 골목에 있었다.
사내결혼을 한 아내와 데이트를 할 적에 회사사람들 눈을 피하려니 장소가 아주 제한적이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처지에 아내 모교인 명륜동 성균관대 인근이 그런대로 괜찮았고,
그래서 그 동네를 자주 찾았다. 성대에 와서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는
비원으로 통하는 그 비밀통로를 이용해 비원과 창덕궁엘 많이 왔었던 것이다.
그런 옛 기억을 떠올려 그 통로가 어딘가를 생각했는데 그 곳을 짐작조차할 수가 없었다.




창덕궁을 둘러보면서 나는 仁政殿 등 큰 궁궐도 좋지만, 長樂門, 大造殿, 樂善齋 등
왕과 왕비의 개인적이며 소박한 처소들이 아주 다정다감하게 다가왔다.
이들 가운데 대조선은 조선의 왕비들 침전인데, 대조전이라는 이 처소의 이름으로
나는 단박에 그 용도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설명하시는 분이 농담조로 대조전이 어떤 곳이겠느냐고 묻길래 내가 말하기를,
大造, 그러니까 한자의 대강적인 풀이로 뭔가 큰 걸 만들고 짓는 곳이니,
이는 곧 왕의 후사, 그러니까 왕의 자식을 났는 곳이라고 우스개삼아 답했더니,
그 분이 살포시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원래 대조라는 의미는 큰 功業을 이루는 것이라는데, 왕손을 만드는 일만큼
큰 공업이 있을까라고 덧붙였더니 해설하시는 그 분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창덕궁 맞은편의 내가 다녔던 옛 통신사가 있던 원남동도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의 기억으로 가든타워를 지나 연합통신사가 있던 옛 삼환기업사옥 곁 골목에
있던 창곡빌딩이 그곳이었는데, 어제 가봤더니 그 건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억하기로 창곡빌딩은 1970년대 말 당시 원남동 골목 그 근처에서는 꽤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건물에서 추억이 많았다. 아내를 만난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1978년 겨울 그 건물에서 했던 회사망년회가 생각난다.
당시 사장이 김창순 선생이셨는데, 내가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두주를 불사하던 선생은 그 무렵 약주를 삼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날
송년회 날 선생의 술은 내 몫이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나는 대취했다.
엉망으로 취한 나는 4층에서 취기에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나를 숨어서 지켜보다 챙겨 가회동 나의 자취집으로 쏟아지는 눈 속에서 끌다시피 해
데려온 게 지금의 아내다.




#창덕궁#낙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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