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 오는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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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오는 날의 추억

by stingo 2024. 7. 8.

문득 돌아보니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고 나 혼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人跡이 드문 드문해진 것이지요. 있기는 해도 이제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분들 뿐이니, 그런 선배들을 다 합쳐서 그냥 모두 없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1980, 90년대 언론계 그 선배들과 보낸 시절은 참으로 재미있었고, 낭만적이었고, 가슴 두근거리던, 그러나 한편으로 심란한 생각들로 충만했던 나날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매일이 술을 마시고자 하는 껀수나 핑계를 어떤 것으로 하는가로 과장을 좀 보태 부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홍성유 선생의 맛집 소개 책이 우리나라에셔 처음 나왔을 때가 가장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그 책에 소개된 맛집이 전국적으로 666곳이었고, 서울과 수도권에만도 수백 집이 넘었으니 그 집들을 몇 날 걸려 한 집 씩 찾아다니자면 최소한 몇년은 걸렸을 것인데, 아무튼 그 것을 핑계삼아 호기롭게 찾아 먹고 마시고 했던 것입니다.
녹번동에 서울에서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속칭 ‘니나노집’이 생각납니다. 단독주택들에 둘러쌓인 그 집은 마당이 옴팡지다 해서 ‘옴팡집’으로 불리던 주막이었는데, 달 밝은 밤 그 집 마루에 술상을 받고 앉아 마시노라면 달빛이 마당에 가득 차면서 술맛을 더해주곤 했습니다.

주막에서 시중드는 여자들을 통칭해 누구든 ‘영란이’라고 부르던 한 선배는 주기가 오르면 “영란아!”라고 부르며 그 마당으로 곧잘 내려가 덩실 덩실 춤을 추곤 했지요. 그리고는 이백의 장진주사의 한 구절을 읊습니다. ‘막사금준공대월(莫使金樽空對月),’ 그러니까 달 앞에 술잔을 빈 채로 두면 안 된다며 막걸리를 벌컥이곤 했습니다.



오늘처럼 장마비가 내리는 날은 어김없이 마시는 날이었고, 선배들은 막내인 나를 어김없이 불러냈습니다. 퇴계로에서 만나 명동 쪽으로 갑니다. 마산식 찌짐(전)에 마산식 소고기국밥을 잘 말아내던 ‘마산집’으로 가서 마시노라면 그 집의 마산 할아버지도 술판에 낍니다.

몇 순배에 얼큰해지면, 그 할아버지의 기발한 술값 셈법이 가동됩니다. 막걸리를 주전자로 계산하질 않고 잔으로 돈을 치는 계산법입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 잔씩 마실 때마다 한 잔, 두 잔 그러며 세며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잔 술이 많아지면서 얼마 후에는 에라, 나도 모르겄다, 지금까지 마신 것 그냥 한 주전자로 한다 그럽니다. 술값은 항상 마신 술에 비해 저렴할 수밖에 없었지요.

오늘 처럼 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영자지 논설실에 계시던 한 선배가 저를 불렀습니다. 비가 안개같이 뿌옇게 내리던 오후였는데, 평소보다 마시기에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삼일빌딩 옆 골목의 ‘대련집’에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의, 당시 우리나라의 마지막으로 남은 퇴기라는 주인할머니의 가야금 뜯는 소리가 술집안에 울려퍼지면서 우리들은 그 소리가 가물가물 들릴 정도로 취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배가 느닷없이 ’행복한 죽음‘을 운운했습니다. ’행복한 죽음‘이라 하기에 나는 알베르 까뮈의 동명소설인 <행복한 죽음>이 떠올라 그 소설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늑막염에 걸린 몸으로 그런 상황에 치명적인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안온한 심정, 그게 역설적으로 그런 죽음이 아니겠는가 운운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취하셨다는 표징으로 나는 알았습니다. 우리들은 그 집을 나와 또 어딘가에서 한 잔을 더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배 사무실의 여비서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선배가 아직 출근을 하시지 않고 있다면서 엊저녁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선배 사무실로 바삐 갔습니다. 논설실로 들어가니 마침 선배가 조금 전에 출근해서는 긴 소파에 누워 라디로을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선배 말로는 엊저녁에 집엘 가다가 취한 상태에서 전봇대에 얼굴을 부딪쳤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얼마 후 비서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와 마시던 그 날, 선배는 병원에서 중한 병을 선고받았다고 했습니다. 설암이라고 했습니다. 그 선고를 받고 나를 불러내 함께 술을 마신 것입니다. 후에 다른 선배로부터 듣기를, 그 선배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술이라는 심정으로 그 날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선배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술을 마시는 자리에 함께 한 것이었지요.

그 선배는 물론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오늘처럼 여름 장마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선배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장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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