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필동선배와 필동 '옥가네된장'에서 점심을 하고 혼자 충무로로 나왔다.
날도 꾸무적하면서 옛 추억이 묻어나는 충무로 길을 걸으며 약간 멜랑꼬릴리해졌다.
세월의 흐름 속에 충무로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서울도심의 다른 지역보다는 많이 변하지 않은 곳이 충무로라, 아직도 그 익숙함은 곳곳에 배여있다.
충무로는 랜드마크가 극동빌딩이다. 옛날 충무로 시절,
약속을 하면 거의 대부분 극동빌딩 지하다방, 아니면 빌딩 뒷문 쪽에서 만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먹고 마시러 갈 곳이 즐비했다.
극동빌딩에서 옛 간호전문대학 쪽으로 걸어오다 오른 쪽으로 꺽어지는 길
맞은 편에 있는 '뚱보갈비'를 참 많이도 다녔다. 내 또래였던 이 집 사장이 뚱보였기에 옥호에 ‘뚱보‘가 들어가 있었다.
부산사람인 뚱보사장은 예쁜 누이동생과 장사를 함께 했는데,
술을 마시며 그 이쁜이 동생 보러 많은 술꾼들이 이 집을 찾았다. 이 집은 아직도 있다.
얼마 전 충무로에서 뚱보사장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모습은 여전했는데, 많이 늙어 있었다.
‘뚱보갈비‘ 그 옆에 닭꼬치를 파는 손바닥만한 가게가 있었다.
닭꼬치 외에 해삼과 멍게를 썰어 내 주기도 했고, 닭똥집과 메추리, 꼼장어를 구워 내놓기도 했다.
가게는 작았지만, 맛이 있어 퇴근 무렵이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술꾼들이 많이 찾던 맛술집이었는데,
그 집이 아직도 있는 게 신기하다. 충무로에서 길건너 퇴계로 남산 올라가는 길에 사무실이 있던
나는 퇴근 후 ’뚱보갈비’와 닭꼬치 집을 참 많이도 다녔는데, 닭꼬치 집을 그때 우리들은
닭꼬치의 닭, 멍게의 멍, 해삼의 해 등 앞 글자를 따 ‘닭멍해똥’이라 불렀다.
명보극장 쪽으로 내려가는 사거리 오른 쪽엔 예전 1980년대에 스탠드빠가 많았다.
그 중 한 곳인, 이층에 있던 '색'이라는 집이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술집이었다.
K증권 사장 비서를 하다 술집을 차린 여주인의 미모, 그리고 주량은 충무로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돈 있는 어설픈 술꾼들이 이 집을 많이 기웃거렸다.
남대문시장 안에서 꼬리곰탕으로 유명한 J집 사장은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꼬리를 바께스에 가득 담아 와 술을 마시러 오곤 했는데, 마담에게 환심을 사기위한 수작이었다.
덕분에 나도 그 유명한 J집 소꼬리를 그 집에서 많이 얻어 먹었다.
충무로 술집 얘기를 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이만 줄여야겠다.
한 곳만 더 얘기를 하자. 중부경찰서로 가는 길 쪽에 있었던 '바나실'도 그 중의 한 곳인데,
그 집에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와 박윤경의 '부초'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앳된 여식애가 있었다.
오늘 충무로 거리를 걷다가 이름이 기억났다. 이세연, 그렇다 이세연이었다.
전북 임실 오수가 고향이라고 했다. 지금은 아마도 중늙은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색’과 ‘바나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색‘의 그 여주인은 그 후 방배동에서 장사를 했다.
‘바나실’의 이세연은 2000년대 초, 동대문 부근에서 우연히 한번 만났다.
그 지역에서 스탠드바를 운영하면서 어엿한 주인이 돼 있었다.
만났던 그 날, 그 집에서 술을 마셨고, 이세연이는 김현식과 박윤경의 노래를,
오랜 만에 만난 나를 위해 멋들어지게 불렀다. 가히 절창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어제 충무로를 걷다가 그 거리 어느 지점의 한 찻집에 홀로 앉아,
그 시절의 충무로를 회상하며 추억에 한참 젖었다.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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