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에 배놔라, 감놔라 하듯 끼어들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하고 상관없는 일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이게 다른 사람 눈에는 다소 차갑게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나이를 먹어가니 차돌같은 그런 성향도 변하는 것 같다.
자신의 노약한 처지에 견주어 지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일말의 감정적인 어울림일 수도 있겠다.
6월 25일 마산.
어느 지인과의 자리에 그 지인의 친구가 있었다. 나하고는 생판 처음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치인과 하는데, 걱정스러운 얘기를 한다.
내가 그리 관심 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인 친구의 여러 말들 중 한 말이 내 귀에 들어 와 꽂혔다.
"엄마로써 이제 더 이상 해 줄 일이 없는게..."
젊디 젊은 딸이 아프다고 했다. 4년을 앓고있는데, 병명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고, 귀에서 소리가 나는 증세인데,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심하다고 했다.
서울의 유명 병원에 예약을 했더니 한달 후에 일정이 잡혔다.
그 사이에 딸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내 지인에게 호소를 한다.
서울 큰 병원에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진료 한번 받아 봐야겠는데, 방법이 없을까.
결국 내가 끼어들었다.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 그게 새끼줄이든, 지푸라기든 뭔가를 던진 셈이다.
말을 꺼내놓고 나는 이내 후회했다. 내가 무슨 재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인가.
서울 올라와서도 그랬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가 왜 주제넘게 끼어들었을까 하는 자괴감이랄까.
하지만 그렇게 자책만 할 수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그 딸 엄마의 심경을 한낱 내 처지와 견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찾아보면 생긴다. 물론 염두에 둔 방안이 있기는 있었다. 나의 외사촌 조카였다.
병원에 간호사로 있는 바쁜 조카다. 마침 그 딸의 증세를 다루는 진료과에 있다.
어제 그 조카를 찾아 통화를 하면서 그 얘기를 했다. 조카는 내 말을 듣자말자 움직였다. 내가 바빠졌다.
그 딸의 인적사항과 증세 등을 알아 조카에게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진료 예약일정이 잡혔다.
7월 9일 두 과의 진료다. 신경과와 이비인후과.
오늘 새벽 산책길에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아울러 그 딸의 쾌유를 빌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니 함안에 사는 후배가 사진을 올렸다. 곱고 무성하게 핀 능소화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세거지 인흥원(南平文氏 世居地 仁興園)의 능소화라고 했다.
그 능소화를 보니 문득 남양주 능내리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터의 능소화가 떠 올랐다.
다산과 진솔의 사랑 얘기에 나오는 능소화다.
능내리 다산유적지의 능소화를 보러 가야겠다. 장마비가 내리면 좋겠다.
장마비 속의 능소화에서 다산과 진솔의 흔적이라도 찾아지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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