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호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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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호메로스

by stingo 2024. 9. 21.

도서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불가피하게 책 한 권을 들고 갔었기에 그 책을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불가피하다는 건 다름이 아니라, 책을 신청해놓고 깜빡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지하로 내려가는데,
책이 도착했다는 발신음이 휴대폰에 왔고,
그래서 대출대에서 책을 급히 수령을 한 상태로 지하식당에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의 한적한 식당, 식탁 내 맞은 편에 노인 한 분이 밥을 먹고 계셨다.
책에 눈을 두고 뒤적거리는 상태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분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밥을 씹고있었기에 말은 못하고 책 제목을 그 분께 보여드렸다.

호메로스, 호메로스… 그 분은 책 제목을 본 후 호메로스가 누구냐고 물었다.
솔직히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밥을 씹고있는데 말을 걸어오니 말하기도 거북살스러웠고.
밥을 삼킨 후 그 분에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를 쓴 작가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노인은 내 말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듣더니, 그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뭐냐고 다시 묻는다.
그걸 설명할 길이 없어 그냥 그 분을 보며 웃었다. 그랬더니 그 분 하는 말씀이 이렇다.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까지 책을 보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졸지에 나는 대단한 독서가가 돼버렸다. 그래서 그게 아니고 위에서 언급한 불가피한 사정을 얘기하려는데,
말이 잘 안돼 왔다갔다 했다. 그 노인 분은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만,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몇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 분은 내 나이를 듣더니 이런다.

“아니 그 나이에 그런 책을 본다고 그게 읽혀집니까?”

나는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노인은 내 대답은 필요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책 안 봅니다. 내가 보는 책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편하게 잘 살 것인가 관한 책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 노인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냥 멍한 상태로 앉아 밥을 씹고 있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그냥 씹고 있었다.

문득 책의 읽고있던 지점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 제우스의 태양 아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리하여 (호메로스의) 이 시들을 관통하는 주제들 - 전쟁과 명예, 위대함과 달콤함, 두려움과 아름다움, 기억과 죽음 - 은
영원회귀라는 화로의 연료라는 것이다.”
”… 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와함께하는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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