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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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네

by stingo 2024. 10. 31.


그 동네에 사는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은 된장집이다. 프랜차이즈로 큼직한 그린색 로고가 인상적인 그 집을 몇번 가면서 맛을 붙였다. 느지막한 점심시간이라 가게는 한산했고, 서빙하는 젊은 아가씨 혼자 좀 전의 복작했던 밥상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 집 가면 항상 먹는 우렁된장을 시켰다.
마른 김과 김치찜이 반찬으로 나오는데, 이 두 가지가 입맛을 돋우게 하면서 된장이 끓기도 전에 공기밥 절반을 비우게 한다. 된장이 끓고 맛있게 먹노라니 김과 김치찜이 떨어졌다. "어이, 봐라." 선배가 종업원 아가씨를 부르는 호칭은 항상 이렇다. 내가 듣기에 미안할 정도로 투박하고 고압적이다. 그런데도 아가씨는 항상 공손하다.
보기에 스물을 갓 넘긴, 보조개가 예쁜 종업원 아가씨는 "네!"하며 달려온다. 부르는 소리가 투박했던 것에 미안함을 가진 나는 선배가 주문을 하기 전에 먼저 김치찜과 김을 가리킨다. 추가로 가져다 달라는 것이다. 아가씨는 역시 낭랑한 목소리로 "네"하며 추가로 반찬들을 가져다 준다. 그 사이 종업원 한 아가씨가 어디선가 왔다.
아마도 잠시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 아가씨는 보기에 몸이 갸날프기 짝이 없다. 그 몸매에 맞게 목소리가 앳되면서 비음이 약간 섞인 게 듣기에 묘한 느낌을 준다. 몇번 들리면서 안면을 익혔는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 사이 김과 김치찜을 한번 더 추가로 해서 먹었다. 세번 째 추가로 시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한 마디 했다. "미안해요." 그랬더니 그 갸날픈 아가씨가 나를 보면서 "아니에요. 저희 집은 추가를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부담없이 시키세요"했다.

점심을 먹고 나와 충무로 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역에서 선배와 나는 헤어질 것이었다. 저 앞에서 노인 한 분이 젊은 여자와 손을 꼭 잡고 오고 있었다. 그 여자가 선배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했다. 선배는 자신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것에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어, 그래, 그래요"하며 노인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그 노인과 선배는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러면 젊은 아가씨는 누구길래 그 노인과 손을 꼭 잡고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선배는 그 노인과 잠시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고, 나는 느릿느릿 앞으고 걸어가고 있었다. 저 노인 분과 여자는 어떤 관계일까. 선배와 걸으면서 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마 딸인 모양이지요"라고 했다. 선배는 딸이 아니라면서 사무실 직원이라고 했다. 선배의 그 말에 나는 "그럼 불륜이구만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여직원과 손잡고 오는 게 어찌 불륜으로 볼 수 있냐며 나를 책망하듯 했다. 선배의 그 말에 나는 대들듯 대꾸했다. "아니 훤한 대낮, 중인환시리에 사장이 사무실 젊은 여직원과 손을 잡고 다니는 게 불륜이 아니면 뭐가 불륜입니까"고 따졌다.

그러는 사이 어떤 찻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선배는 내 대꾸엔 반응을 하지 않은 채 그 찻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여기서 커피 한잔하고 가자고 했다. 찻집 앞에 세워놓은 가게표지스탠드에 어떤 여자가 앉아서 그 스탠드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주인처럼 보였다.
선배와 나는 내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테라스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그 찻집을 보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찻집 이름이 우선 그랬다. '피플스 카페.' 한글로 적으면 그렇지만, 그 집 옥호는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 'Peoples Cafe'다. 무슨 이런 카페 이름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태적으로 people 이 단어만 보면 느낌이 쎄해진다. '인민'이라는 말이 겹쳐지면서 저 북쪽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선배에게 그런 투로 얘기를 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러 왔길래 물었다. "people's cafe,  이 옥호 누가 지었나요?" 아주머니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단박에 "우리 아저씨가요" 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아저씨 젊을 때 운동권이었구만요, 좌파..." 아주머니는 나의 이 말에 별 이상한 소리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실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그 아주머니가 이상하게 나왔다. 선배가 아주머니를 부르면서 예의 그 투박하고 고답적인 어투로 "어이 보소!"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정색을 하며 나와서는 "저 '보소' 아니거든요. 저 이 집의 엄연한 사장님이예요. 사장님이라고  부르세요" 했다. 아주 도전적이었다. 그러고는 패내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는 잠시 그 주인여자의 행태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쉰소리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까 길에서 본 그 노인과 젊은 여자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불륜이라고 주장했고, 선배는 그게 왜 불륜이냐며 나는 책망하듯 했다. 나는 선배의 그런 입장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면서 아, 선배도 사무실 여직원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필동 여기만 오면 이상한 사람들을 보게 되고 덩달아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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