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을 쓴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시쳇말로 ‘얼리 어답터(early adapter)’였던 모양이다. 글을 펜으로 쓰지 않고 1900년대 초, 당시로는 필기의 신발명품인 타이프라이터, 즉 타자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타자기는 그 역사성에서 유명 제품으로 스미스 코로나(Smith Corona)나 로열(Royal)을 그 원조로 치는데, 둘 공히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에 타자기를 만들어 출시했다. 그 타자기를 카프카가 그 시절 사용했다면 ‘얼리 아답터’의 측면 외에도 글쓰기 도구로서의 타자기의 이점을 일찍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오늘 어떤 신문에서 카프카의 타자기 얘기를 쓰고 있다. 연인인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타자기로 썼다는 대목에서 카프카는 이렇게 말 한다.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워 넣으면서 어쩌면 실제의 내 모습보다 더 까다롭게 저 자신을 묘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카프카는 타자기를 통해 쓰는 글이 펜으로 쓸 때와는 어떤 다른 점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에 타자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들린다. 카프카는 그런 감정을 담아 500여 통의 편지를 대부분 타자기로 쓸 정도로 타자기에 끌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글을 쓴 필자는 그러면서 타자기로 쓰는 글은 육필의 글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감정 따위를 캄플라주할 수 있는 ‘익명성’의 이점이 있다는 점을 카프카를 들어 적고 있는데, 카프카가 실제 그런 이유로 타자기를 즐겨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좀 모호하게 읽힌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경우 사람마다 好惡가 있을 것이다. 기계로 쓰는 글이 본질적으로 싫다는 작가들도 많다. 그래서 김 훈이나 이 문열 등처럼 육필을 고집하는 작가들이 꽤 있는데, 이들은 타자기나 PC로 글을 쓰는 게 일반화된 지금의 세상에서 그런 측면으로 별도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타이프를 거쳐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컴퓨터로 글을 쓴지가 꽤 오래됐다.
타이프를 처음 대한 것은 1980년대 초 영어기사 쓰는 일을 할 때인데, 영어기사는 펜글씨보다 무조건 타이프로 써야 한다는 것은 선배들로부터 배우기를 그렇게 배운 탓이다. 아마도 영어는 외국어이기 때문에 타이프로 써야 제격이라는 선입감 때문일 것이다. 또 영어기사는 편지나 일반 글과는 다르고 또 편집이나 제작 상의 문제 때문에 반드시 타이프로 써야하는 불가피성도 있다. 그러다 또 어찌어찌 해 한글기사를 써야하는 처지로 변하면서 우리 글 기사도 일찍부터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런 직업을 거쳐 지금까지 기계로 글을 써온 게 40년이 다 돼 간다.
그러니 지금의 나로서는 컴퓨터 외 다른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쩌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펜으로 써 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손에 익지가 않다. 카프카에 빗대 얘기하자면 나로서는 이런 선입감 같은 게 있다. 펜글씨보다는 생각의 여지를 확보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어떤 글이건 글을 쓰면서 글의 방향을 잡아나가기에 좋다는 것이다. 글의 방향과 관련한 생각은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이 더러 있다. 그것을 순간적이나마 생각으로 머무르게 하기위해서는 펜글씨보다는 컴퓨터로 쓰는 게 속도 면에서 안도감을 준다는 얘기다. 이건 물론 실제로 측정을 해 보지 않았기에 맞는 것인지 자신할 수는 없다. 단지 습성적인 것에 의한 느낌일 수도 있다.
오늘 카프카의 타자기에 대한 이런 글을 대하면서 떠올려지는 타자기가 있다. 1980년대 초 처음 마주한 ‘스미스 코로나’ 타이프라이터다. 선배가 쓰던 것을 물려받은 것인데, 몸담고 있던 회사를 떠나면서 그것과 똑같은 타자기를 구해놓을 정도로 정감이 가는 타이프다. ‘스미스 코로나 클래식 10’이 정확한 명칭이다. ‘10’이라는 숫자는 바(bar)의 길이로 10인치짜리라는 것이다. 12인치짜리도 긴 바도 있는데, 사용하기에는 10짜리가 제일 좋다. 12짜리는 퀵 리턴을 하면 몸체가 기우뚱거리면서 넘어지거나 한다. 10짜리는 타이핑 소리도 좋다. 글을 쓰면서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타자 음에 빠져들 정도다. 회사를 나오면서 하나 별도로 구해 놓았던 그 타자기는 지금은 장롱 위 먼지구더기에 놓여 있다. 꺼내본지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오늘 집에 가면 한번 꺼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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