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필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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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필동에서

by stingo 2024. 11. 28.

어제 눈 억수로 내리는 날, 필동선배와 필동 ‘옥가된장’에서 느지막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꾸무적한 잿빛 날씨, 바깥엔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내리고…
우리는 폴폴 끓고있는 우렁된장을 앞에 놓고 앉아 밥을 먹다 말고 한참을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우리 옆 좌석에 어떤 여자 분이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혼자 밥을 먹고있는 게 좀 쓸쓸해 보였다.
그러니 눈길이 자꾸 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밥과 함께 입에 술잔을 톡 털어 넣는 것이었다.

소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식당 분위기에 흔치가 않은 것이어서,
곁눈길로 슬쩍 식탁을 훔쳐 봤더니 소주 병이 특유의 파란색이 아니라 무색이었다.
그러면 그건 분명 36도짜리 ‘화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 저거 독한 소준데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대낮에 중년 정도의 여자가 혼자서 분위기 좀 젊잖은 식당에서 독한 소주를 마신다는 것이 그렇지 않겠는가.
선배도 그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소주 한잔 할래?” 선배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 선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런저런 사유로 술을 삼가고 있는 걸
피차가 서로 잘 알고있는 터였다. 여자 혼자 독한 소주를 마시고있는 모습이 바깥의 눈 내리는 풍경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선배와 나는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 여자 분은 소주를 계속 마시고 있었는데,
잔을 입에 털어넣는 모습이 아주 익숙해 보이는 것이 보는 나로 하여금
침을 꼴깎거리게 할 정도로 아주 맛있게 마시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눈 내리는 길을 걸으며 선배와 충무로역으로 가고 있는데,
선배나 나나 별 말이 없었다. 혼자서 독한 소주를 입에 털어넣는 그 여자 분에 대한 느낌이 계속 아른거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선배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야, 우리 어데 가서 소주 한잔 하자.”
선배는 그 기분대로 그냥 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고마 가입시더…” 나는 그런 선배를 그냥 가자며 다독거렸다.
선배는 그래도 계속 소주 마시러 가자 했고, 나는 그냥 가자고 하고…






#필동#옥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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