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과 김운용의 소설,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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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과 김운용의 소설, <산행>

by stingo 2025. 1. 1.

아침, 그것도 새해 아침에 소파에 혼자 느긋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새해 첫날 이런 분위기가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덩달아 뭔가 어떤 기시감을 느끼기도 한다. 별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마침 옛날 KBS의 ’TV문학관’이 나온다. 이걸 보자. 그러면서 어떤 것이 나올까 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제목이 <산행>이라서 그랬다.

소설 원작를 토대로 보여주는게 ’TV문학관’ 아닌가. 그래서 언뜻 서영은이 떠올랐다. 서영은이 지난 1984년에 발표한 게 <산행>이었고,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의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나를 산으로 이끌게 한 게 바로 그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TV문학관‘의 텔레비전 픽처로 만들어진 것, 그리고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문득 내가 보게된 것이 나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 기대감으로 보면서 원작에 서영은이라는 이름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작이 다르다. 서영은이 아니고 김운용이다. 김운용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작가다. 그래서 찾아 보았다. 나만 몰랐지, 1940년 생의 김운용은 상당히 역량있는 소설가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의 소설 <산행>은 1980년 그에게 ‘현대문학상‘을 안긴 작품이었다. 그러면 우리나라 소설 중 <산행>은 두 가지다.

서영은의 것과 김운용의 것 둘이다. 연대별로 보자면 김운용의 것이 1980년이니까, 서영은의 것보다 4년 먼저 나온 셈이다. 나는 1984년 ‘이상문학상‘의 추천우수상이었던 서영은의 <산행>을 읽을 적에 김운용의 동명 소설이 있다는 건 물론 몰랐다. 김운용의 이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TV문학관‘을 통해 보면서 대충의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설악산으로 겨울 관광산행을 떠나는 다양한 연령층의 무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런저런 얘기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런 내용이려니 하면서 이 소설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1980년대 초반 소설의 흐름이 그랬던 것이다.

서영은의 <산행>으로 돌아가 보면, 앞에서 언급했듯 이 소설은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소설 쓰는 한 작가의 절망과 이를 산에서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소설 속 주인공이 절망을 극복하는 산은 바로 치악산이었다. 나는 그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과 어떤 동병상련의 연대감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혼자 치악산을 올랐다. 그러면서 이게 나의 3십대를 산에 빠져들게 한 하나의 계기가 됐다.

마침 그때 장모님이 암을 앓게 되면서 장인어른이 치악산 인근의 신림에 초가를 하나 마련했고, 나는 그 초가를 베이스캠프 삼아 치악산을 마치 나의 모산처럼 오르내렸던 것이다. 신림에 명동성당 만큼의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셨던 장모님은 그 성당에 오르간을 기증했고, 주일 미사때마다 오르간을 연주했다. 그러니 신림과 치악산은 30대 시절의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아무튼 나는 서영은의 <산행>을 읽은 게 계기가 되어 치악산과 인연을 맺었고, 그로인해 내가 수십년에 걸쳐 산행을 하게되는 한 배경이 된 것이다. 나는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산행을 거의 하지않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항상 그리는 것은 산이다. 예년 같았으면 나는 신년 첫날인 오늘 북한산에 있었을 것이다. 백운대는 안 되겠지만, 그 초입의 노적봉 정도는 오른 후 능선을 타고 대남문에서 내려와 구기동 어느 편의점에서 아마도 이른 낮술 한잔을 궁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연히 보게된 ‘TV문학관‘이 나를 옛 추억에 젖게 한다. morning has broken… 이제 나의 오늘 새해 첫날 아침은 기울었다. 햇볕이 거실 가득히 들어오고 있다. 바깥은 겨울이지만, 그답지 않은 안온함 속에서 나는 다시 텔리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앉았다.







#소설<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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