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무렵 어두컴컴해질 적에 내가 외출 채비를 하니까, 아내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볼 일이 좀 있다며 대충 얼버무렸다. 집을 나와 능곡역에서 서해선을 타고 간 곳은, 김포공항역에서 9호선 그 다음 역인 공항시장역. 거기서 7시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약속시간 전에 그 사람은 나왔다. 쇼핑백에 그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분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패내키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들어서려는데, 쇼핑백을 들고 있으니, 아내가 당연히 물었다. 또 아무 것도 아니라는 투로 대충 얼버무렸다. 서재로 들어와 갖고온 물건을 꺼내 보았다. 앤트로(Antro) 블루투스 키보드. 이걸 '당근'에서 보고 아내 눈치를 보며 멀리까지 발품을 팔아 사갖고온 것이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이제 웬간한 건 다 만져 보았고, 갖고있는 것들도 많다. 로지텍, 액토, 삼성, LG, 말랩, 한성, 아이노트 등등... 그런데도 아직 내가 보지 못했던 게 더러 나온다. 어제 내가 구입한 것도 처음 보는 키보드인데, 옛 수동타자기를 연상시키는 올드 풍의 모습이 나를 못 배기게 한 것이다. 생긴 건 전반적으로 레트로한 느낌을 주면서도 콤팩트한 사이즈가 앙증맞다. 키캡이 더욱 그러하다. 좀 오래 갖고 있다가 2022년 넘겨버린 1907년 출시의 코로나(Corona) 포터블 접이식 타이프라이터의 키캡과 흡사하다. 타이핑 소리가 또 희한한 게 나를 빠져버리게 한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것인데도 소리는 옛 수동타자기 소리와 비슷하다. 그 소리에 빠져들어 밤 늦게까지 이 키보드를 만지작거렸다.
키보드 명칭은 '아르톤(Arton)'인데, 제조사는 파인데이(Fineday)다. 찾아 보았더니 부산에 본사가 있었고, 2023년까지 영업을 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키보드가 국내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판매와 영업은 국내회사가 하지만, 역시나 제조국은 중국이었다. 내가 알고, 또 갖고있는 키보드들 거의 대부분은 중국제다. 국내 브랜드는 삼성, LG, 그리고 페나(Penna) 셋 뿐이다.
이 키보드를 작동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다. 블루투스 페어링은 잘 된다. 하지만 무선기기 3대를 연결시키는 멀티페어링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안 된다. 멀티페어링은 된다. 그러나 작업환경에서 무선기기를 교체해가며 연결시키는 페어링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객센터에 문의해볼 생각인데, 2024년 이후 영업활동에 관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보아 현재 이 회사가 계속 운영 중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누라가 제일 그렇지만, 70을 넘긴 나이에 내가 블루투스 키보드에 이렇게 눈독을 들이는 것에 대해 납득을 하지 못하는 주변들이 많다. 물론 나 또한 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면 좋고 호기심이 당기는 걸 어떻게 하나. 이제 나도 나의 이런 습벽을 설명하고 익스큐스를 하는데도 지쳤다. "좋으면 좋은 것"이다는 나의 생각은 그래서 더 완고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 사진 둘은 예전에 갖고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1907년에 출시된 코로나접이식타자기(Corona Foldable Typewriter)으로 예전에 찍어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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