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마산의거의 와중, 2차봉기 날인 1960년 4월 12일 그날 마산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그 진실을 캐기가 수월치 않다.
그날이 의미가 깊은 게 그 전날인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참혹하게 발견됨으로써 마산 시민들이 봉기에 나섰고,
그 다음 날인 12일 마산의 고등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시위에 나섬으로써 3.15마산의거를 마무리하는 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날 어떤 학교가 언제 어떻게 선도적으로 학생 데모를 주도했고,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구체적이지 않다.
이와 관련한 공식기록들이 그렇다.
그냥 이날 마산의 전체 고등학교들이 시위에 나선 것으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
어느 학교에서 어떻게 시작되어 이게 마산의 전체 고등학교 시위로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좀 애매하게 적고있을 뿐이다.
당시 언론보도도 그렇다. 그래서 그걸 알아보고자 나름 시도를 했다.
관련한 자료를 찾으려 했으나 이래저래 쉽지가 않았다.
당시 경찰이나 군 관계기관의 첩보 형식의 기록에 접근하려 했으나 제한적이었다.
예컨대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신청을 했더니, 그런 정보자료들은 국가기관에만 제공될 뿐 개인에게는 보여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일반 국민들이 그런 정보를 접할 수가 없다면 정보공개라는 건 허울만 그런 것이지 결국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걸 절감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당시 특무부대 자료를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그 또한 제한적이었다.
나의 이런 시도에 대해 당국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날 마산에 전체 고등학교 학생들이 데모에 나선 것만 알면 될 것이지 어떤 학교에서 시작돼 어떤 학교가 먼저 나오고,
어떤 학교가 꼬래비로 나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하는 반응이었다.
광주 5.18의 시발이 전남대학교냐 조선대학교냐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그냥 5.18이 광주에서 일어난 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며칠 전 마산의 한 관계 당국을 방문해 거기서 취합한 자료를 접하면서,
그곳에서 자료 발췌를 위해 찾아 놓은 한 책자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민주혁명의 발자취>라는 책자로,
3.15와 4.19가 끝난 1960년 7월 동아일보의 이강현 기자가 엮어 발간된 것인데, ‘전국각급학교학생대표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오늘 국회도서관을 뒤졌더니, 용케도 찾을 수가 있었다.
이 책에 마산의 그날 4.12일과 13일에 관한 기록이 마산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적혀 있었다.
내가 본 지금까지의 어느 기록보다도 마산고등학교의 조직적 시위의 발단과 시위 동선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럼으로써 약간의 갈증은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목이 마르다.



#민주혁명의발자취#3.15마산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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