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엘 가도 이제는 만나보게 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절감한다. 쓸쓸한 고향의 그림자다.
나보다 윗분들은 이제 거의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그렇지, 가만 생각해보니 단 한 분도 없다.
내 또래 친구들은 어떤가. 친구들도 많이 저 세상으로 가고 없다.
남아있는 친구들도 거의 다 운신이 자유스럽지 않다. 아프거나 몸을 사리거나 하기 때문이다.
딴에는 모처럼 고향에 왔다고 전화질을 해서 친구 불러내기가 이제는 수월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즈음은 고향에 가면 일이 있을 때면 일만 후딱하고 올라온다.
올라가는 차 시간 등으로 부득이하게 시간이 좀 남으면 혼자 고향의 옛 선창가나 거리를 걷는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인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서로 기억을 더듬으며 뭔가를 맞춰보고는 그저 쓸쓸하게 악수를 나누곤 헤어진다.
후배들이 있다. 후배라 해봤자, 그들도 대부분 60대 후반이나 70대에 접어들고 있는 나이들, 그러니 같이 늙어가는 처지들이다.
그래도 나보다는 젊으니까 가끔씩 만남이 활기를 띠기도 한다.
지난 번 내려갔을 때는 경남대에 오래 봉직했던 김남숙 교수를 만나 재미있는 한 저녁을 보냈다.
노래방에서 윤동주, 이육사 시들을 지긋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것을 듣는 건 색다른 감동이었다.
출판사 우무석 대표와 오케스트라 설진환 지휘자 같은 분들도 후배들이다.
이들과 잔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내 기분이나 취향대로는 마실 수가 없으니 조심스럽다.
마산서 치과병원을 하는 후배들이 서너명 있다. 하필 내가 이즈음 치아 문제로 곤란을 겪고있는 상황이라,
이들 치과병원 후배들이 나에게는 각별한 측면이 있다. 지난 2월 말 내려갔을 때,
마침 후배 병원 앞을 지나다 ‘서프라이징’이 재미있겠다 싶어 병원에 들렀다.
등록을 하고 한 30분을 기다리다 진료실에서 김형준 원장을 만났다. 어이구, 행님이 우짠 일입니꺼?
그때 마침 나는 이가 불편한 상태였다. 후배 치과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창구에서 여직원이 진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해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다음 날, 신마산 댓거리 아구찜 잘 하는 식당에서 김 원장을 다시 만났다. 밥값도 후배가 냈다.
김 원장 이모님이 서울 여의도에서 식당을 하고 계신다.
마산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잘 아는 ‘구마산‘이 그 집이다.
이모님은 연세가 90을 넘겨셨는데도 아직 식당에 나오신다고 했다.
어제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마산에 도착해 출판사 분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저녁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나는 치통으로 밥을 먹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출판사 대표가 누구 누구 치과의사 얘기를 한다. 김영민 후배가 하는 치과병원이다.
옛날 마산서 유명했던 시민외과 김화수 원장님의 막내 아들이 김영민 후배다.
그 후배가 치과의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병원이 출판사 인근에 있다는 것이고,
그러니 출판사 우 대표는 우선 그 병원에서 땜빵이라도 해 보라며 앞장서서 나를 병원으로 인도했다.
김영민 원장은 내 동생과 친구이기도 하고, 바로 위 형인 김영호가 나의 동기다.
그리고 그 위, 외대를 나온 김영식 선배도 예전에 잘 알고있던 사이다.
김영민 후배도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했다. 행님이 우짠일로?… 뭐 이런 식이다.
이가 아프다 했더니 보고는 당장 빼야한다고 했다. 마산 와서 이를 뺀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싶어,
그냥 약이나 좀 처방해달라고 했다. 김 원장은 바빴다. 그때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임플란트 수술이 있다며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수술장으로 급히 내려갔다.
역시 그 병원 여직원하고도 실랑이가 있었다. 진료비를 주겠다하고, 받지 않겠다고 하고…
이런 경우를 적고있다 보니 이제는 결국 고향엘 가도 후배들 신세만 지는 처지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송구스러움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이제 고향가는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김형준#김영민#우무석#설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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