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인의 訃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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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어떤 지인의 訃告

by stingo 2025. 5. 3.

오진근이라는 분이 계셨다.
2011년 내가 마지막으로 보기 전까지 그 분은 회현지하상가에 자기 이름을 내건 카메라 수리소를 했다.
나하고 알게된 것도 물론 카메라 수리 때문이다. 나는 1998년 하반기부터 클래식카메라 딜러를 하면서,
서울 장안의 카메라 수리 잘 하는 분들과 교류가 있었다. 오 씨 이 분도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는 그 당시 청계천 시계골목에서 카메라 수리를 하고 있었다.

오진근 이 분은 내가 그때까지 만났던 카메라 수리하는 분들 가운데 실력이 제일 나았다.
무뚝뚝하고 말은 없었으나 기술 하나는 뛰어났다.
나보다 네살 아래였었기에 그는 나를 ‘형님‘이라 했고,나는 오 기사라고 불렀다.
서로를 차츰 알게되면서 같이 술도 많이 마셨다. 오래 된 독일 카메라를 주로 다루는 딜러 입장에서는,
수리 기술이 좋은 기술자를 아는 것이 중요했었기에,
술은 그런 교류를 위한 하나의 이를테면 수단이었다.

오 기사는 그 얼마 후 회현지하상가에서 ’세일‘이라는, 명성 높은 클래식카메라숍을 하고있는
이정억 사장의 주선으로 회현지하상가에 수리소를 냈고, 그때부터 나는 거의 매일을 오 기사 수리소에 드나들면서
클래식카메라 동향을 교환하고 수리에 관한 기술을 익혔다.
내가 오 기사 기술에 반한 계기가 있다.

2000년 초, 나는 레어(rare) 아이템에 속하는 카메라를 이베이에서 어렵게 구입할 수 있었다.
짜이스 이콘(Zeiss Ikon)에서 1930년대에 출시한 ’이안 콘타플렉스(Contaflex TLR)’라는,
세계 최초의 35mm 이안리플렉스 카메라로, 조작도 까다롭고 수리도 어려운 복잡한 카메라였다.
이 카메라는 이베이에 올라올 적부터 고장이 난 상태였고, 나는 고장난 상태인 줄을 알고 구입했다.
그때  나는 오 기사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받자마자 나는 이 카메라를 오 기사에게 맡겼고,
그는 카메라를 완벽하게 고쳤다. 처음 만져보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이 카메라를
오 기사가 고쳤다는 소문을 내가 내는 바람에 오 기사는 유명세를 탔다.
그렇게 하면서 나와 오 기사의 인연은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11년 초 집안 일로 얼마 간 회현지하상가를 한 10여일 나가지 못했다.
그 후 나갔더니, 오 기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수리소 간판은 그대로 있었는데, 사람만 없어진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올 줄을 알았는데, 오 기사는 나타나질 않았다.
오 기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달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아,
여기 저기 알만한 연락처로 수소문을 해봐도 오 기사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증발해 버렸으니,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오죽했으면 실종신고까지 내자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리고 세월이 흘러갔다.

오늘 내 블로그의 꽤 세월이 지난 글에 어떤 댓글이 달렸다.
2022년인가, 오 기사를 생각하면 쓴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댓글은 오 기사가 오늘 5월 2일 별세했다면서 부고장을 첨부한 것이었다.
14년 만에 오 기사는 부고장에 실려진 사진 한장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다 이렇게 됐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s://m.blog.naver.com/darby4284/222826900852

오진근 기사,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옛날 카메라를 좀 오래 만지다보면, 필수적으로 수리 쪽의 사람들을 알고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그 중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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