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두물머리 연꽃을 보러가기로 해 나선 길이다. 친구들은 내외로 오고 나는 혼자다.
연꽃을 보러간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꽃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은, 나이에 맞춰볼 때 좀 생뚱맞다.
새삼 꽃을 그리워하며 다가 갈 나이도 아닌데, 비 내리는 장마철에 연꽃 구경이라니 가당찮은 짓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들이 월요일 아침 비를 맞으며 길을 달려 양수리 두물머리로 가기로 한 것은 분명 연꽃을 보러가기 위한 것이지만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몇 날을 벼려 기다려 온, 뭘 먹기 위한 것이다. 두물머리 인근 강가에 갤러리를 겸한 카페를 하고있는 친구도 오랜만에 볼 것이고 그렇게 해서 같이들 맛 있게 먹을 것인데, 그 먹거리는 다름아닌 장어국이다.
친구 아내 중에 진해 분이 계신다. 진해 식의 장어국을 잘 끓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재작년과 작년, 그 분이 끓여 준 장어국을 먹었다. 올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들을 초대했다. 남편 생일을 겸한 것이라고 했다. 재작년에 중학교 동기 한 스무 명을 양수리 친구 갤러리에 초대해 장어국을 끓여 먹은 바 있다. 그 때 그 맛에 모두들 거짓말 좀 보태 환장했다.
진해는 마산 인근이다. 그 바다가 그 바다다. 거기서 잡은 장어 맛이 다를 수가 없다.
다만 어떻게 조리하는 바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비주얼에서도 다르다. 마산 장어국은 발갛다.
고추장 등 붉고 매운 양념을 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해 장어국은 그렇지 않다.
국물이 발갛지도 않고 그리 맵지도 않다. 맵쌉한 맛은 물론 있다. 둘의 차이는 주 양념의 차이다.
마산은 고추장을, 진해는 된장을 풀어 쓰기 때문에 마산 것은 얼큰하고 진해 것은 고소하다.
두물머리 강가의 연꽃 밭은 넓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꽃은 쉽게 활짝 핀 그 모습을 보여지지 않았다. 흩뿌리는 비 속에 안개만 무성하다. 몇몇 봉오리들에서 꽃을 피운 것도 있었지만 드문드문했다. 두물머리에 온 두 가지 목적 중 하나가 좀 시들하니 나머지 것에서 좀 강렬해야 할 것 아닌가. 진해 장어국은 그런 강렬함츨 채워주고도 남았다.
장어국의 맛도 맛이지만, 친구 아내의 정성이 너무 고맙다. 국 그릇에서부터 수저, 접시 등을
모두 집에서 준비해 온 것이다. 게다가 쌀과 콩, 찹쌀도 전부 집에서 장만해왔다.
어디 그 뿐인가. 간장게장과 더덕, 가죽나물, 갓 김치 등 반찬으로 준비해 온 것들이 모두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이 반찬들 가운데 백미가 산초김치다. 장어국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는 김치다. 경상도 바닷가 지방에서 끓여먹는 장어국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양념이 바로 산초다.
그 산초로 김치를 담가 장어국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산초가 장어국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입맛 다시게 하는 맛난 반찬의 재료는 모두 진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친구 아내의 언니가 진해에 계시는데, 그 언니가 보내주는 멸치젓갈과 산초, 그리고 방아로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들 입맛에 맞을 수밖에.
정말 모처럼 잘 먹었다. 밥이며 국이며를 일일이 떠다 안기고, 김치까지 죽죽 찢어주는 친구 아내의 정성이 고맙다.
우리들은 두끼를 그렇게 해서 푸짐하게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도 친구아내는 남은 국과 반찬은 혼자 사는 갤러리 친구를 위해 깔끔하게 손질 해 냉장고에 챙겨놓는다.
맛난 음식에 재미있는 얘기들로 우리들은 두물머리가 이슥해져갈 때까지 앉아 놀았다. 장마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눈이 호사하고 입이 호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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