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고 번개치는 날, 북한산은 무섭다. 어제 비오는 북한산에서 낙뢰를 맞은 등산객 2명이 죽고 다쳤다는 아래 기사를 보니 내가 당했던 사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2007년 이맘때 나도 비슷한 경우를 한번 당한 것이다.
그즈음에 의상능선 상의 용출봉에 낙뢰가 떨어져 몇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다음 날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나는 어떤 호기심에서였는지 그 우중의 날씨에 의상능선에 올라 용출봉 쪽으로 가고있었다. 그때 "꽝!"하고 번개가 쳤다. 용출붕의 쇠다리에 뭔가 번쩍 빛이 났다.
엉겁결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가 땅바닥에 바짝 업드렸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는데, 그때의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천둥소리가 좀 잠잠해지자 나는 오던 산길을 되돌아 혼쭐나게 내려왔는데, 백화사 입구까지 오는데도 억수같은 비 속에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그리고 그 며칠 후 나는 북한산 계곡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백운대와 대남문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쪽 아래 계곡을 왜 내가 택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계곡 초입에서 굴러 떨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물속이었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은 무서운 것이다. 갈비뼈가 나갔고 허벅지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물속을 빠져나와 계곡길을 올라 도로 쪽으로 나와 쓰러졌다.
쏟아지는 비속에 그 길은 무인지경이었다. 그 길을 기다시피 해서 매표소까지 내려왔다. 119 요청을 위해 매표소 문을 두드렸으나, 매표소도 텅 비어 있었다. 다시 기어 704번 정류소에 가까스로 와서는 다시 쓰러졌다. 버스가 오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구파발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 정신을 차린 후 내 모습을 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얼굴 반쪽은 타박상으로 검게 부어올라 있었고, 갈비와 허벅지 쪽의 통증은 극심했다.
그 다음 날이 프레스센터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모처럼 마련된 자리라 안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나는 퉁퉁 부은 시커먼 얼굴 그대로 나갔다. 얼굴 부상은 한달 정도 갔다.
오늘 이 기사를 대하니 그 때 생각이 난다. 북한산은 누가 뭐래도 아직 야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관련기사: https://www.donga.com/news/NewsStand/article/all/20200823/102603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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