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간 길에 靑巖寺라는 절에 올랐다.
성주를 지나 무주 쪽으로 한참 가니 김천이 나오고,
佛靈山이 있고, 그 산에 들어앉은 절이다.
비구니 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비구니들이 많이 오간다.
절을 둘러보니 절 자체로 운영하는 ‘승가대학’도 그 안에 있다.
절에 오르기 전 절을 안내한 동생으로부터 대충 설명을 들었다.
김천의 유지로,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한 崔松雪堂이라는 분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절의 重創과 부흥에 헌신했다는 것.
그게 1920년경이라고 한다.
가람은 엎드린 소(臥牛)의 형국이다.
그래서 부드럽고 포근하다. 곱게 뻗은 소나무들이 가람을 둘러쌓다.
호젓한 절 길을 오르니 계곡을 아래로 두고 글자를 새긴 바위들이 여럿 나오는 게 이색적이다.
숱한 이름들이 새겨져있다.
많은 이름들 중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바로 ‘崔松雪堂’이다. 이 절을 중창하신 분이다.
편편하면서 가장 잘 보이는 큰 바위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떤 바위에는 붉은 색채까지 가미해 새겨놓은 것도 있다.
이 절의 중흥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라 그렇게 새겼구나 하고 오르는데,
그 이름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바위 틈틈들에서 그 이름이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절 길 옆에는 그 분의 공적을 기리는 碑閣도 즐비하다.
절의 주요 시설물 건축을 기리는 비각들에도 또 그 이름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속세의 말이다.
최송설당 이 분은 생전에 육영 등 많은 선행을 하신 분이다.
그러길래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다.
청암사 절도 그 분의 불심으로 寺勢가 넓어졌으니,
절이 그 분을 기려 절 주변에 그 이름이 여럿 보이도록 새겨진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너무 많다. 곳곳마다에 그 분 이름들이다.
"나 좀 알아달라."
그 분의 이름들에서 이런 하소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에 다를 것이지만,
나에게는 그게 좀 허허롭게 느껴지고 다가온다.
가람 초입 곳곳에 그렇게까지 자기 이름을 많이 새기고 알려서
어쩌자는 것인가.
우두커니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곡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맑디 맑은 溪水는
인간의 욕심에 엮어진 우둔함을 탓하는 것 같다.
허망스러운지고.
허망스러운지고.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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