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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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김민기 '친구'

by stingo 2020. 9. 10.

노래 불러본지 오래 된다. 노래 부를 기회가 더믈고 쉽지않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그럴 때가 있긴 하지만 대개는 나더러 못 부른다며 나를 빼고 지나치기 일쑤다. 정말 못 부르는가 싶어 혼자서 흥얼거려 보곤 하는데, 내가 듣기에도 노래를 못 부른다. 어쩌다 내가 이리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한 때 나도 노래 좀 잘 부른다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로 덕을 본 때도 있다. 군 시절에 그랬는데, 점호 끝나고 야심한 밤에 고참들 앞에서 노래 몇 곡 불러주고 소주와 라면을 얻어 먹기도 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다. 김민기의 노래는 대부분 키(key)가 높지않아 고음에 약한 나에게는 잘 맞았다. 특히 읊조리는 음유풍이어서 흐름과 분위기를 타면 부르기가 나에게는 좋았다. '친구'를 포함해 김민기를 따라하는 모창의 여러 노래로 나는 모임에 초청도 받아 학교 무대에도 서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1973년 입대 전까지는 김민기 노래에 빠져 그의 노래를 많이 그리고 즐겨 불렀다. 반주의 알페지오 기타 주법도 김민기가 하는 그대로 따라 할 정도였다.

김민기의 '친구' 이 노래는 1970년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애창곡이었다. 몇해 전까지도 서강대에 있었던 S 모 교수는 당시 운동권의 핵심으로 김민기의 친구였다. 입대를 앞두고 마산에 있는데, 어느 날 그가 내려왔다. 피신삼아 택한 곳이 마산이었다.

 

몇 날을 나의 추산동 집 2층 방에서 함께 지냈다. 내 군 입대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다. 저녁이면 둘이서 남성동 선창가 주점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러다 술이 취하면 '친구'를 불렀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으로 시작되는 그 노래는 어찌도 그리 비오는 밤 선창과 바다의 분위기 그대로인지, 둘이는 그 노래를 되풀이로 몇번이고 불러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한다. 군에 있는 김민기 면회를 가겠다는 것이다. 김민기가 가족을 통해 미군 야전잠바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했기에 그걸 구해 전해주려 가겠다고 했다. 그 잠바는 마산 강남극장 양키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 구할 수가 있었다. 김민기는 그 무렵 미 8군 AFKN에 카튜사로 복무하다, 뭔가 당시 정권의 비위를 거슬려 전방의 소총부대로 전출돼 가 있는 처지였다고 했다. 입대 하루 전날 밤, 둘은 다시 선창가 주점에 앉았다. 내일이면 나는 논산으로, S 그 친구는 서울로 올라 갈 것이었다. 둘이는 엉망으로 마시고 엉망이 된 채 '친구'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1970년대 말, 둘이 어쩌다 만났다. 그 친구는 통신사 기자로 있었고, 나도 다른 통신사 기자로 있을 때다. 내 사무실이 있던 종로 3가 뒷골목에 주점이 많던 시절이다. 초저녁부터 만나 마시다 내가 그를 종로 3가 뒷골목으로 이끌었다. 잘 가던 단골집으로 가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도 그 집이 단골집이어서 둘이서 길거리에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술집 2층이 좁은 다락방이었는데, 둘은 그 방에서 마셨다. 얼마나 마셨을까, 그 친구 입에서 '친구' 노래가 나왔다. 둘은 술잔을 부딪쳐가며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불렀다.

"...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지금 그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까. 김민기의 '친구'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친구와 마산 밤바다, 그리고 종로 3가 그 주막의 다락방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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