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한 언론계 선배는 모든 여자들의 이름이 ‘영란이’였다. 어디서든지 여자만 보면 영란이다. 예전에 홍제동이나 응암동 쪽 골목에 허술하지만 맛집 형태의 실속있는 술집들이 많았다. 선배 신문사 차 타고 많이 갔다. 차는 골목 입구까지만 딱 데려다 준다. 골목 초입에서부터 선배는 “영란아!”라고 부른다. 잘 가는 한 주점의 여주인은 물론 영란이가 아니다. 근데도 선배에게는 영란이다.
하도 영란이, 영란이, 하길래 언젠가 선배에게 물었다. 도대체 영란이가 누구길래 모든 여자를 영란이라고 부르십니까. 술을 한 잔 주-욱 들이킨 선배의 대답인즉슨 이렇다.
어느 해 가을, 설악산에서 무슨 언론관계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는 무슨 세미나. 그저 노털 쟁이들 술 한잔 먹게하려는 자리였을 것이다. 비선대 널찍한 암반에서 술판을 벌였다. 판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즈음에 선배 눈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앉아있는 맞은 편 좀 멀찍한 바위 사이로 웬 여자가 왔다갔다 하는데, 그 모양새나 행보가 심상찮은 것이었다.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그 여자가 벌거벗은 채 였는데, 그 몸매가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을 햇살에 희번덕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놀랍고 궁금하기도 선배는 그 쪽 바위로 갔다. 가서 보니 그 바위 뒤 계곡에 어떤 여자가 벌거벗은 채로 계곡수에 몸을 담근 채 텀벙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의 여자를 본 순간 선배는 술이 확 깨면서 뭔가 환상을 보는 느낌이었다고했다. 점잖은 선배의 표현을 또 빌리자면, 벌거벗은 그 여자의 모습은 관음의 대상이라기 보다 설악골에 내려 온 선녀와 같이 보였다고 한다.
결국 선배는 선녀같은 그 여자와 그날 거의 비몽사몽 상태로 설악골 계곡에서 얘기도 주고받고 술도 같이 마셨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그 여자와 선배는 인연을 이어갔는데, 그러면서도 그 여자에 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신의 신상에 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 여자를 만나려면 어쨌든 설악산까지 가야만 했고, 선배는 그래서 몇 차례 설악산으로 그 여자를 보러갔다.
여자는 이쁘고, 술도 잘 마시고, 노래도 잘 불렀다. ‘노들강변’을 특히 잘 불렀다. 그렇게 알고 지내던 어느 날, 그 여자가 서울로 오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자는 서울로 왔다. 신문사 앞 다방에서 둘이 만났다. 선배는 마침 좀 울적한 기분에 술이 땡기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평소와 달랐다. 조신한 자태에 좀 슬픈 얼굴이었고 술 마시기를 마다했다. 여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선생님을 만나 즐겁게 잘 지냈다. 이제 저는 갈 시간이 됐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선배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도 이상하게 더 이상 묻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여자를 지긋이 보면서 말만 듣고있을 뿐이었다.
그 말을 한 잠시 후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 서려고 했다. 그러다 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면경, 그러니까 조그만 손 거울이었다. 그걸 선배의 손에다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 날 때 그 면경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떠났다.
선배 표현을 또또 빌리자면, 선배는 그 여자와 그 자리에서 마주하는 순간이 흡사 무아지경의 어떤 상태였다가 했다. 그러면서 말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상하리 만치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왔다고 했다.
그렇게 그 여자가 헤어진 뒤로 선배는 그 여자를 잊지 못해 설악산을 몇 차례 갔다. 하지만 그 여자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선배는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고했다. 단 하나 이름이 ‘영란이’라는 것 외에는 백지상태의 여자였다.
그 후로 선배는 모든 여자가 영란이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만나는 여자마다 영란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짓궂은 질문을 선배에게 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 사모님은 어떻게 부르십니까. 그 물음에 대한 선배의 대답은 못 들었던 것 같다. 선배 가신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이 얘기를 적고보니 내가 그 때 선배에게서 들은 게 ‘구라’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아무튼 그 선배에게 모든 여자가 ‘영란이’였다는 건 사실이다. 설악산에서 만나 홀연히 면경 하나 손에 쥐어주고 떠난 여자. 설악산과 면경을 떠올리니 문득 김지하 선배 생각이 난다.
1970년대 초 그 선배 도망 다닐 적에 우리들끼리 몰래 모이는 아지트가 신촌에 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날은 고주망태로 마셨다. 이화여대 입구 육교 아래에 그 당시 미군 C-레이션을 돌가루 포대 종이에 넣어 야매로 팔곤 하였다. 그게 우리들의 소주 안주였다. 술이 취하면 지하 선배 입심도 대단했다.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설악왕국’의 마지막 왕자다. 어쩌다 왕국이 망해 지금 이리 쫓기는 신세가 됐지만 나는 왕자이니 그리 모셔라. 그러면서 그 징표로 꺼내 보여주는 게 있었다. 바로 면경이었다. 그것도 깨진 반쪽짜리 면경. 그게 지하 선배는 ‘설악왕국’ 왕자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하 선배는 이 얘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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