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선배에게 전화. 가는 전화신호가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선배의 말. “나 지금 귀가 안 들려. 문자로 해, 문자로…”
선배는 혼자 서대문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몇달 전 통화에서는 귀가 멀쩡했던 양반이 저러는 게 당혹스럽다.
선배는 그 때 통화에서 클래식음악을 듣고 지낸다 했다.
웬 일로 클래식? 물었더니,
잘 모르겠고 아무튼 클래식이 좋아 클래식음악에 빠져 지낸다고 했다.
오늘 모처럼 전화를 드린 건, 오클랜드의 후배와 연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옛날 1980년대 초 통신사 시절, 선배가 나의 사수였고, 오클랜드 후배에게는 내가 사수였다.
선배는 나를 꼬드겨 영문보도 파트로 데려 와 앉혔다.
그리고는 그 얼마 후 헤럴드 경제부장으로 내뺐다.
그 댓가로 선배는 평생 나에게 술을 사기로 했다. 한동안 잘 얻어 마셨다.
그런 선배가 술을 끊은지도 꽤 된다.
선배의 술이 그러니 만나기도 뭐해서 잘 연락을 하지 못하다
오늘 전화를 드렸는데, 선배의 모양이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오클랜드 후배는 나 혼자 영문파트에서 고군분투(?)할 적에 공채로 뽑았다.
이 후배와 몇 년을 보내면서 둘이 술도 엄청 마셨다.
후배는 그 후 연합통신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후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저께 연합뉴스 외신기사를 보다,
후배가 오클랜드 통신원으로 있길래 메일을 보냈는데 어떻게 용케 연락이 취해졌다.
그 기쁨을 선배에게 전하려했는데, 오히려 선배의 그런 처지를 알게 돼 마음이 아프다.
선배는 문리대 독문과 출신이었는데,
절친한 고등학교 동기 친구 분이 교육부장관을 지낸 이 모 교수였다.
선배가 1980년대 초, 옛 서린호텔 건물 바에서 만나 인사를 시켜 주는 자리였다.
역시 문리대 동문동기인, 저항시인으로 유명했던 김 모 시인이 온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는 모르겠다. 만나자마자 술을 마셨고 그런 분위기로 이어졌다.
기억나는 건, 그 자리에서 이 모 교수 분이 선배를 일컬어 한 얘기다.
독문과 시절, 단테의 '신곡'을 옛 독일어 원서로 독파하고,
그 어려운 글귀를 줄줄 외고 다니던 특출한 학생이었다는 것.
나는 술김의 얘기라 생각했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술 자리에서 단테의 '신곡'을 원어로 줄줄이 외고 있었다.
선배는 회사에서 소문난 '술꾼'이었다. 그것도 사고뭉치 술꾼이었다.
마셨다하면 자질구레한 사고를 저질렀다.
이를테면 집에 가는 길을 잃어 파출소나 경찰서에 들어가있는 게 다반사였다.
찾으러 가면 신발 잃은 채로 구치소에 앉아있는 게 일쑤였고.
선배는 1977년인가 재혼을 했다. 형수는 상주 분이었다.
신혼집이 이문동에 있었다. 그 때 또 선배에게 꼬드겨 신혼집까지 갔다.
그리고 나를 가운데 끼우고 잤다. 형수 돌아가신지도 꽤 된다.
오늘 이 얘기를 적는 것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며, 카톡으로 하자했다.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카톡으로 하니 이야기에 힘이 실리질 않는다.
음악을 하나 보냈다. 차이콥스키의 '멜랑코리 세레나데.'
보내고 나서 아차, 싶었다.
귀가 안 들려 들을 수 없는 처지를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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