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북한산성 쪽에서 대남문 쪽으로 오를 때 생각이 많아진다.
추억에 많이 잠긴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북한산도 이제부터는 추억의 산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코스를 처음 올랐던 게 30여년 전, 한창 산에 빠져 살던 시절이다.
매주 빠지지 않고 이 코스로 올랐다.
대서문으로 해서 도달하는 삼거리에서 방향을 결정한다.
백운대로 갈 것인가, 대남문 쪽으로 오를 것인가.
컨디션이 좋으면 백운대였고, 게으름이 피어오려면 대남문 쪽이었다.
구파발 쪽에서 오르는 북한산은 코스가 다양하다.
백화사 쪽으로 오르는 의상능선, 효자골에 오르는 숨은 벽 등등.
이런 코스로도 많이 올랐지만, 아무래도 많이 올랐던 건 대남문 코스다.
대서문을 보면 옛 생각에 젖는다.
어제 산행에서 대서문을 지나며, 그간 얼마나 많이 대서문을 지났던가 하는 생각에 대서문을 좀 더듬었다.
예전, 그러니까 북한산 대서문 인근이 정비되기 전 이 쪽 풍경이 소박하고 좋았다.
대서문을 막 지나면 부근에 원주민들이 막걸리와 라면을 파는 가게도 몇 군데 있었다.
산을 내려오며 딱 쉬기 좋은 장소다.
느지막한 오후,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며 바라다 보는 대서문의 풍광이 역사를 매만지게 하면서 살갑고 좋았다.
대서문 안의 천정을 보면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와 천정의 저 문양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오래 오래 성문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조선조 건축 양식의 상징적 문양이라 했고,
그 친구는 무속신앙의 문양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대서문을 지날 때마다 궁시렁 궁시렁 댔다. 지 말이 맞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 말이 맞을 것이다.
어제도 대서문 안의 저 문양을 보며,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그 친구 생각을 했다.
중성문에서 바라다 보는 백운대의 이 풍경을 나는 좋아한다.
여름의 푸른 풍광도 좋지만, 한 겨울 백설이 분분할 때는 기가 막히는 풍경이다.
한 겨울, 딱 이 지점에서 아이젠을 매야 한다. 중성문을 지나면 얼음길이기 때문이다.
날이 무덥고 다리 상태가 안 좋으니 산을 오르는 걸음이 고되다.
중성문과 노적사를 지나면 쉬어가는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서 물도 좀 마시며 요기를 하려 했으나, 코로나로 정자가 패쇄됐다.
그대로 계속 걸어 숲 속에서 한참을 앉아 쉬었다.
그 휴식 중에 묵주기도를 바쳤다. 산행 중에서도 나름 의미있는 휴식이었다.
드디어 대남문이다. 중성사를 지나 대성암에 도달하기까지 걷다 쉬다하며 올랐다.
오랜 만의 이 쪽 산행이라 그런지 유독 힘이 들었다. 날 또한 엄청 덥기도 하고.
대성암은 아직까지 공사 중이다. 예전 대성암에 좋은 우물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그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물 한바가지로 목을 축이곤 일로 대남문까지 오르곤 했다.
대남문 정상엔 더위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남문 누각 아래 그늘에 몇몇들이 요기를 하고 앉았다.
나도 갖고 간 삼각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대남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울시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장관이다.
저 풍경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남문에서 바라보는 보현봉도 장관이다. 보현봉은 오르기가 까다롭고 위험하다.
그래서 정상은 오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조치가 있기 전에 보현봉 정상을 한번 올랐다. 아주 오래 전이다.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산길은 가파르고 험하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래서 문수봉 쪽으로 해서 사모바위를 지나 내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코스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대부분은 대남문에서 곧바로 하산을 한다.
나도 요즘 무릎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름 조심조심해서 내려갔다.
한 반쯤 내려오면, 가파른 길이 아니라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스마트폰 음악을 들으며 내려오면서, 산길 곳곳에서 추억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북한산을 오르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추억의 산행이 되고 있다.
나로서는 그래서 북한산이 '회상의 산행(sentimental mountaineering)'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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