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 내 또래의 젊잖게 생긴 어떤 분이 서서 간다.
그 곁, 그러니까 출입문 곁에 또 비슷한 또래의 어떤 분이 서서 간다.
열차는 가고 있는데, 내 앞에 선 분이 출입문 곁의 그 사람을 보면서 자꾸 헛기침을 한다.
출입문 곁의 그 사람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차 천정만 무심히 바라보며 가고 있다.
얼마 쯤 갔을까, 앞에 서 계신 분이 무슨 말을 한다.
"저~기 거기가 열렸어요."
무슨 말인가 싶어 바라다보니, 그 분은 같은 말을 또 한번 한다.
출입문 곁의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 말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또 한번,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손짓을 하며 말한다.
출입문 곁 그 사람의 바지 앞 지퍼가 열려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황급히 지퍼를 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답례를 했다.
금방 지나가는 상황이었지만,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한참이 걸리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말하자면 답답했다는 뜻이다.
한번 말하고 지적하면 왜 금방 알아듣지 못할까하는 답답함과 함께.
다음 역에서 그 두 분은 내렸다.
내 맞은 편 자리에 곱상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열차는 지하 구파발 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나를 보며 살며시 손짓을 하며 웃는다.
왜 웃을까. 혹여 아는 분이 아닌가 해 다시 한번 그 할머니늘 쳐다 봤다.
모르는 할머니다. 그럼 그렇지하며 고개를 돌리려는데, 할머니는 또 손짓을 하며 웃는다.
이상한 할머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떨구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 바지의 지퍼가 남대문 마냥 열려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손짓과 함께 나에게 웃음을 보낸 것은 지퍼를 잠그라는 시그널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딴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딴 짓이 무엇이겠는가. 바지 지퍼 내린 것을 모르고 천정만 바라보고 가던
좀 전 그 사람을 딱해하는 일종의 교만스런 마음이 아니었던가.
결국은 그게 나의 자화상이었던 셈이다.
이 사진이 어디서 나왔다.
지금 사는 집 거실에서 어느 여름날 린호프(Linhof) 대형카메라를 셀프타이머로 놓고 찍은,
이를테면 자화상 격인 사진이다.
십수 년이 훨씬 지났는데, 그 때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나로 여겨지지 않는다.
소진해가는 답답하고 간절한 심정의 끝자락에서 파닥이는 형상이 있다면 그 게 내 모습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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