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이 많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영국의 처칠, 프랑스의 드골 등이 대표적으로 꼽혀진다. 이들 영웅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2차대전의 여류 영웅은 없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승의 댓가는 주로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여자들은 남자들의 명성 뒤에 숨어있다.
어제 어떤 사이트를 보다, 2차대전의 걸출한 여류 영웅 한 사람을 발견했다. 2차대전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나로서도 처음 듣고보는 사람이다. 이름하여 낸시 웨이크(Nancy Wake; 1912-2011)인데, 2차대전 당시 그녀의 활약상이 너무나 크고 유니크해 영화로도 만들어 진 2차대전의영웅이다.
낸시는 정규군인이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행적이 더욱 드라마틱하고 돋보인다. 레지스탕스로서의 낸시의 활약상이 얼마나 돋보였나 하는 것은, 그녀가 나치독일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1급 지명수배자’였다는 점이 뒷받침한다. 그만큼 낸시는 나치독일에서는 거슬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낸시 웨이크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합류하기 전까지는 간호사와 저널리스트 생활을 했다. 호주 시드니를 거쳐 1932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고, 1939년 전쟁이 발발하던 때, 그녀는 남편인 프랑스 사업가 앙리 피오카(Henry Fiocca)와 마르세유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치독일의 프랑스 침공 6개월 후 프랑스가 항복하자 낸시는 남편과 함께 아무런 망설임없이 레지스탕스에 합류한다.
레지스탕스 대원으로서 낸시가 처음 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독일군 점령지역에 추락한 연합군 전투기조종사와 유태인을 스페인으로 탈출시키는 일을 맡았을 때다. 그녀는 이 일을 맡아 배달원으로의 변장 등 뛰어난 변신술과 임기응변, 과감성 등을 발휘해 많은 조종사와 유대인들을 탈출시킨다. 이후 1943년 그녀의 존재감이 나치독일에 포착된 후 낸시는 남편과 함께 스페인을 탈출해 영국으로 잠입한다. 그 과정에서 낸시의 남편인 앙리는 독일군에 체포돼 처형된다.
영국에서 낸시는 ‘헬렌(Helene)’이라는 암호명으로 특수작전집행부인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에 배속돼 각종 독일점령지 침투작전에 참전하는 한편으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후에서 지원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인1944년 6월, 지역 레지스탕스 부대인 마퀴스(Maquis)에 배속돼 대규모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패배한다. 이때 낸시는 500km에 달하는 악전고투의 길을 자전거를 타고 끝내 SOE에 가 상황보고를 했고, 이 목숨을 건 역정은 레지스탕스 투쟁사에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되면서 그녀의 활약상으로 남아있다.
2차대전 후 낸시 웨이크는 연합군의 영웅으로 떠 받쳐진다. 그 공로로 영국으로부터 ‘조지 메달(The George Medal)’을, 미국으로부터 ‘자유훈장(The Medal of Freedom), 프랑스로부터 ‘레지옹 도뇌르(The Legion D’honnear)’를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로부터 각각 최고훈장을 수여받았다.
낸시는 ‘하얀 쥐(White Mouse)’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이 별명은 그녀가 변신과 은신에 능해 하도 잡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나치독일의 게슈타포가 붙여준 것이다. 1985년 낸시 웨이크는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그 제목 또한 <하얀 쥐(The White Mouse>로 붙였다. 1997년에는 낸시의 레지스탕스로서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낸시 웨이크(Nancy Wake)’가 제작됐다. 낸시는 2011년 8월 런던의 한 병원에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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