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國 음식을 제일 맛나게 그리고 즐겁게 먹은 것은 바로 프라하의 추억과 연결된다. 1993년 가을, 프라하를 갔을 때 디플로맷 호텔에 묵었다. 바쁜 일정 끝에 주어진 하루의 휴식. 동료들을 떼 놓고 혼자 프라하 구시가지 거리를 거닐다 어둑해질 무렵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마주친 호젓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백열등 조명아래 '테레지아(Theresia)' 라는 조그만 레스트랑. 저녁을 해결하고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뭔가 좀 소란스러워 보니 8, 9명 되는 무리들이 앉아있었다. 아무렇게나 걸친 입성들로 보아 이들이 집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그들 중 나이 께나 듬직한 여성 한 분이 손짓을 한다. 그들이 눈에도 동양인이 이채로워 보였을 것이다. 그들 그 손짓에 따라 그들과 합석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다. 프라하로 들어갔을 때 주의사항 중 하나가 집시는 무조선 피하고 보라는 것이었으니, 딴에는 호기심도 그렇지만 꽤 호기를 부린 셈이다. 말은 물론 통하질 않았으나, 표정과 손짓이 그 구실을 잘 해주었기에 의사소통은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았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파스타와 피짜,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 유럽 순방이 꽤 길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현지 음식에 식상감이 들 때였다. 음식들은 사람 수를 감안했음인지 양이 풍성하고 많았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그들을 따라 먹기 시작했는데, 어라, 그 맛이 호텔이나 다른 식당에서 먹는 것과 많이 달랐다.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레드 와인은 좀 진득감이 느껴질 정도로 진하고 독했다. 파스타도 좋았고, 피짜도 좋았지만, 스테이크가 특별히 맛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의, 레어(rare) 스테이크였는데, 그들은 그걸 아주 굵게 썰어먹었고 나도 그들을 따라 한입 가득 넣고 우직우직 씹었다. 신선한 맛의부드러운 식감과 한입 가득한 포만감이 입안을 가득채웠다. 파스타는 지금 생각해보면 바질(Basil) 파스타였는데, 그 또한 바질 특유의 상큼한 향과 입에 사각거릴 정도 씹혀지는 생바질과 부드러운 면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러니 와인이 당겨질 수밖에. 잔들을 부딪쳐가며 와인을 물 마시듯 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집시들의 노래는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그들 특유의 것이 있다. 합창을 하듯 부르는 그들의 노래와 춤에 나는 빠져들었고, 급기야 나도 그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막판에 귀에 좀 익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슈만의 '유랑의 무리들'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 후에 프라하를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그러니 나에게 프라하 디플로맷 호텔 건너편의 '테레지아'는 유일한 추억의 명소다. 그 레스트랑이 아직 있을까 싶어 구글링 등 검색을 해 봤으나 나오질 않는다. 'Theresis'로 검색을 하면 18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e Theresia)만 나온다. 그녀의 동상이 얼마 전에 프라하에 세워졌다는 뉴스과 함께.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그러니 자꾸 마음이 바빠진다. 더 늦기전에 프라하로 가야한다는.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서귀포의 어느 이탈리안 레스트랑에서 파스타와 피짜를 먹다가 문득 프라하의 그 '테레지아'를 떠 올렸다. 그만큼 맛이 좋고 분위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산방산과 제주바다 전망이 일품이 '젠 하이드어웨이(Zen Hideaway)'라는 곳이다.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분이 제주에 간다면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이다. 서울 홍대 앞에도 그 체인점이 있다고 했다.
https://blog.naver.com/darby4284/222567613938
제주 4題(1) - 서귀포의 이탈리안 맛집, '젠 하이드어웨이(Zen Hide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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