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 옛 적, 그러니까 소위 왕년의 생각으로 자신을 과신할 때가 많다.
나도 물론 그렇다.
노래도 그 중의 하나다.
오래 전의 얘기다. 나보다 10여년 위인 고향 선배님 한 분이 계신다. 나를 이쁘게 보셨는지,
술도 잘 사주고 나로서는 과분한 어디 중요한 자리에도 잘 데리고 가셨다.
어느 날 둘이서 속닥하게 마시는 어느 술자리에서 선배님은 술이 좀 취했다.
이런 저런 취기의 말씀을 하시더니 갑자기 노래 부르러 가자고 했다.
웬 노랩니까?
아, 갑자기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다.
무슨 노래인데요?
영등포의 밤. 그 노래가 부르고 싶다.
반술도 안 된 나를 선배님은 그여코 노래방엘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영등포의 밤'을 불렀다. 그런데 그 선배님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내가 듣기에 선배님의 그 노래는 그닥 잘 부르지 않는 것으로 들렸다. 이유가 있다.
나의 십팔번 또한 '영등포의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그 노래를 불렀다.
선배님의 내 노래에 대한 코멘트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얼마 후 선배님이 자주 만나시는 국민학교 여자 동창모임엘 갔다.
나 또한 그 국민학교를 나왔으니, 나로서는 대선배들의 모임이었다.
모두들 취기가 어리고 자리가 거의 파할 무렵, 선배님은 또 노래방으로 가자고 했다.
선배님은 동창분들 앞에서 '영등포의 밤'이 부르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래방에서 선배님은 그 노래를 불렀다. 한번으로 족하지 않았든지 두어 번 더 불렀다.
흥에 겨운 동창분들이 박수를 치다가 나를 지목한다. 후배도 한번 불러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러질 않았어야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도 '영등포의 밤'을 불렀던 것이다.
박수가 훨씬 많이 나왔다. 동창분들이 수근거렸다. 저 노래는 후배가 훨씬 났다.
그 이후로 선배님은 내 앞에서 '영등포의 밤' 그 노래 얘기는 더 이상 하질 않았다.
선배님도 젊었을 적에는 그 노래를 아주 잘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감성만 그렇지 예전처럼의 노래가 되질 않는 것이다.
나 또한 예전부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노래방엘 가면 거의 항상 '영등포의 밤'을 불렀다.
그리고 좀 자만심을 가졌다. 그 노래에 관한 한 내가 자신있게 부른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또 친구들과 노래방엘 갔을 때 나는 또 그 노래를 아주 자신있게 불러 제꼈다.
부르면서 뭔가 좀 힘이 들고 딸린다는 느낌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끝났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니 앞으로 그 노래 부르지 마라. 돼지 멱따는 것도 아니고.
그 노래방에서 나오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뭘 건넨다. 내 노래가 녹음된 카셋 테이프였다.
내가 부른 '영등포의 밤'을 집에서 테이프로 들었을 때의 그 무참한 심정이라니.
진짜로 궥궥대는 게 영판 돼지 멱따는 소리였다.
그 이후로 '영등포의 밤' 이 노래를 자청이건 타청이건 남 앞에서 불러본 적이 없다.
그래도 가끔씩 흥얼거리기는 한다. 그래도 나의 '최애'의, 그러니까 십팔번이었으니까.
얘기가 장황해졌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영등포의 밤' 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오기택이다. 1960년대 초반이니까 반세기 전에 부른 노래다.
그 오기택이 지난 23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생각나는 게 바로 '영등포의 밤'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게 중학교 시절이지만, 배우기는 고등학교 때다.
이 노래에 앞서 배우고 많이 불렀던 노래로는 '등대지기' '고향무정'이다.
'우중의 여인'이나 '충청도 아줌마'도 그 무렵 따라 부르던 오기택의 노래들이다.
'우중의 여인' 이 노래는 마산에서의 어린 시절 노래 콩쿨대회에서 많이 불려졌기에,
어릴 적부터 입에 흥얼거렸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오기택의 별세소식을 접하면서, 내 인생의 어느 시절 내 감성의 한 부분에 자리했었고,
지금도 흥얼거려지는 그의 노래에 대한 추억이 새삼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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