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잃어버리는 꿈을 자주 꾼다. 그것도 특히 단체로 등산을 갔을 때,
하룻밤을 여럿들과 어울려 잔 후 등산화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꿈 속에서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런 꿈은 대개 뭔가 답답한 일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꾼다.
오늘 아침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짐 소프(Jim Thorpe; 1887-1953)라는 미국의 인디언 출신 육상선수에 관한,
구체적으로는 그의 운동신발에 얽힌 글인데 나에겐 확 다가오는 글이다.
짐 소프는 육상을 비롯해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을 섭렵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운동선수였다.
그는 특히 10종 및 5종 경기에 탁월해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출전,
이 부분에서 우승해 올림픽 2관왕이 됨으로써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 최초의 인디언으로 기록된 인물로 유명하다.
짐 소프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올림픽 역사상 많은 얘기를 남긴 인물이다.
우선 그가 2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게 올림픽 사상 그 전례가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할 뿐더러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소프는 올림픽 육상 10종과 5종경기 결승에 출전하기 전 자신의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안다. 누가 훔쳐간 것이다.
경기시간은 촉박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신발로 바꿔 신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소프는 올림픽 경기장의 쓰레기 통을 뒤진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쓰레기 통에서 소프는 운동화 두 쪽을 발견한다. 물론 짝재기 운동화였다.
소프는 그것을 신어 보았다. 그런데 왼쪽 신발이 너무 컸다. 소프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양말을 겹겹으로 몇 켤레 더 신어 발을 신발에 맞춘 것이다. 말하자면 임기응변이다.
그렇게 해서 출전한 경기에서 소프는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니 그 우승이 얼마나 극적이었겠는가.
짐 소프에 관한 이 글이 나에게 다가오는 건 신발을 둘러싼 상황에서의 일종의 동병상련 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꿈과 현실이라는 측면에서의 상이점은 있을 것이지만,
올림픽 결승경기 출전 순간 운동신발을 잃어버렸을 때의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프는 최악의 상황에서나마 임기응변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는 점에서,
오늘 우연히 접한 짐 소프에 관한 이 글은 뭔가 나의 나태하고 나약해진 정신상태를 “쿵”하고 때리면서 깨우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꿈 속에서 나는 신발을 찾으려 이리저리 헤매며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찾아진 꿈은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소프는 운동신발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짝재기 운동화를 신고 그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나에게는 뭔가 어떤 가르침을 안기는 것이다.
읽어본 김에 짐 소프에 관해 좀 더 찾아보았더니, 소프는 그의 인생 자체에 극적인 부분이 많은 인물이다.
일례로 그는 1912년 올림픽 육상부분 2관왕이 됐지만, 이내 금메달 타이틀이 박탈된다.
올림픽 출전 전 프로야구 두 시즌에 출전한 게 올림픽 출전 전 30일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명예는 그가 죽은지 30년 만인 1983년 IOC에 의해 극적으로 복원된다.
IOC는 조사 끝에 소프가 30일 규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판정을 번복하고
그를 다시 1912년 올림픽 10종 및 5종 공동우승자로 복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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