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독일 부역 푸르히너(Furchner), 폼젤(Pomsel) 두 독일 할머니
본문 바로가기
sapiens(사람)

나치독일 부역 푸르히너(Furchner), 폼젤(Pomsel) 두 독일 할머니

by stingo 2022. 12. 22.

나치 독일의 만행에 부역한 97세 할머니에게 무려 79년 만에 유죄선고가 내려졌다. 할머니는 당시 18세의 나이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며 대규모 살인을 방관하고 지지한 혐의를 받는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름가르트 푸르히너가 20일(현지시각) 독일 이체호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각) BBC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독일 북부 이체호 법원은 과거 살인 1만505건을 조력하고 살인미수 5건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름가르트 푸르히너(Irmgard Fruchner)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무려 79년이나 흐른 사건이지만, 독일에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는 공소시효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번 유죄 판결이 가능했다. 푸르히너는 18세였던 범행 시점 나이를 고려해 소년법정에 섰다.

프루히너의 강제수용소 근무당시의 모습(추정)

 

푸르히너에 대한 재판은 지난 해 10월에 시작됐다. 푸르히너는 당시 공판 직전, 거주하던 양로원을 빠져나와 도주를 시도하다 5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재판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연장선에서 프루히너는 재판관의 질문에 답변을 거의 하지 않아 자신에게 부과되고 있는 죄업에 대한 인정 여부를 회피하는 듯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열린 이날 재판에서는 과거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했고 그 시절을 후회한다며 참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Irmgard Furchner(1925 - )

 

현대 독일은 나치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다.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 근무자였던 존 뎀야누크에게 직접적 증거 없이 살인 조력 혐의 유죄를 판결한 것이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독일 검찰이 101세 최고령 전범 요셉 슈에츠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는 베를린 북쪽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341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으나, 지금까지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브룬힐데 폼젤(1911-2017)

 

이번에 유기징역이 내려진 프루히너와 대비되는 할머니가 있다. 지난 2017년 107세의 나이로 사망한, 히틀러의 핵심참모로 나치독일의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여비서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이라는 할머니다. 그녀는 법정에 서질 않았다. 종전 무렵 히틀러의 베를린 벙커에서 용케 살아남았던 폼젤은 평생을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침묵으로 살아오다 100세가 되던 2010년에 돌연 태도를 바꿔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죄업을 밝히고 나온 것이다.

프롬이 괴벨스의 여비서 겸 속기사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그 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와 그녀의 전기와 인터뷰 구술을 정리한 책<어느 독일인의 삶>도 출간된다. 폼젤은 하지만 괴벨스의 비서로서 나치의 만행에 부역한 죄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나는 괴벨스의 사무실에서 타자기를 두드렸을 뿐이다."

폼젤이 자신에게 대두되는 나치독일 만행의 죄과에 대해 한 말이다. 말하자면 프롬은 "나는 직장의 직장인으로서의 의무감. 소속감 등 일상에 충실했을 뿐"이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브룬힐데 폼젤의 괴벨스 비서 근무시절의 모습

 

폼젤의 이러한 입장과 주장은 나치 최대의 전범이자 유대인 학살자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예루살렘 재판에서 시종일관 취한 입장과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아히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나치독일 최대의 전범 아이히만의 자신의 죄과에 대한 이런 태도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eil)'이라는 말로 규정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나치독일의 부역자라는 걸 강력히 부인한 폼젤의 태도도 아렌트의 이 규정에 어느 정도 들어 맞는, 아니 더 나아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폼젤이 아이히만과 달랐던 점은, 그녀가 죽기 전 자신의 상전인 괴벨스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괴벨스가 세계인류에 한 일이나, 그가 히틀러 벙커에서 자기 자식들을 살해한 사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폼젤과 프루히너, 둘 다 모두 100세를 넘기거나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 자신들의 행위에 단죄를 받았거나 받고있는 것이다. 이들이 종전 후 지금껏 오래 살아오면서 양심상 자신들의 과오를 과연 나몰라라 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온전했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끈질기게 연명해온 삶이었을지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