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대문집’에서의 선배님들과의 오찬을 겸한 송년모임.
마산고 15회니까 나보다 14기가 위인, 말하자면 대선배님들이다.
배효진, 강위석, 함정훈 세 분의 공통점은 모두 언론계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론계 대선배이기도 한 것이다.
배, 함 두 분 선배는 가끔씩 뵙는데, 강위석 선배는 처음 뵙는다.
예전 중앙일보 논설실에 계실 때 글로서는 익히 뵈었던 분이니
그런 점에서는 구면이라해도 될 것이다.
어제 모임을 위해 오류동에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고,
동기친구 분들과 옛 학교시절 등 정다운 얘기들을 많이 나누셨다.
강위석 이 선배의 학.경력이 이채롭다. 연세대 수학과를 나오셨는데,
원래 연세대 의과대학에 합격하고는 수학과로 전과를 하셨다는 것이다.
짖굳게 그 이유를 물었다. 선배의 대답이 아리송하다.
의과대학 공부가 골치 아플 것 같은데다, 수학이 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배의 말씀이 걸작(?)이다.
고교시절 수학을 억수로 못했다는 것인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바뀌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과로 갔고, 나중에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것도
수학이 큰 바탕이 됐다고 한다.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나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다.
수포자로서의 동병상련에다 그에서 완전히 역전되는 공부를 하신 선배 아닌가.
내 처지를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내가 보기에 김 형도 원래 수학적인 머리가 대단한 것 같습디다.
이 무슨 말씀인가 싶어 되물었더니 이러신다.
내 글쓰는 걸 보아하니 수학적인 머리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배의 그 말씀이 아직도 나에게는 아리송하다.
세 분 모두 아직 약주 한 두어 잔은 하실 정도로 건강하신 게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가웠고, 그런 기분에 나는 좀 많이 마셨다.
어제 서대문에서 뵌 강위석 선배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언젠가 어떤 인터넷 매체에서 언뜻 지나가면서 선배의 시 한편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였을 뿐 잘은 모른다. 그런데 어제 만난 자리에서 선배로부터 시집을 한 권 받았다.
그리고 나서 아, 선배가 정말 시인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됐다.
어제도 문학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선배께서 이제하 선배와 더불어
옛 마산의 문학동인회인 ‘白痴’의 일원이라는 것도 어제 처음 알았다.
더러는 고인이 되신 분도 있는 그 동인회의 멤버 대부분을 알고있고
그에 관한 글도 쓴 적이 있는 나로서는 많이 반가웠다.
오늘 새벽 작취미성 상태에서 읽어 본 선배의 시들 가운데 하나가
자꾸 달그락거린다. 여운을 많이 남긴다는 얘기다.
슬픔은 거짓말을 한다/자기는 네모난 거울이란 말/초록빛 보름달이란 말은 거짓말이다/
슬픔은 참말도 한다/자기는 날아다닌다는 말은 참말이다/날개가 없다는 말도 참말이다/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말도 참말일 것이다/이 말을 하면서 부르르 떨었다/잠시지만 오르가즘에 들었던 슬픔/
내가 자기를 기쁘게 했다고 말했다/거짓말이다. 암, 거짓말이다/내가 슬픔을 진짜 기쁘게 했을까?
(‘슬픔은 거짓말을 한다’ 전문 -강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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