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水鐘寺, 그리고 '卽發佛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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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水鐘寺, 그리고 '卽發佛心(?)'

by stingo 2023. 1. 2.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명색이 가톨릭신자라 망설임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그 쪽으로 자꾸 흘러갔다. 대웅전 앞문은 차마 열지 못하고 옆으로 난 쪽문에서 살며시 안을 들여다봤다. 대웅전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안의 풍경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역시 그랬다. 고즈녁한 분위기 속에 부처님이 앉아 계셨고 짙은 향내음이 대웅전을 감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졌다. 모은 두 손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이른 아침 운길산 水鐘寺. 새해 두째 날 신새벽에,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눈을 떴고 그대로 일어나 집을 나섰다. 경의선을 타자. 그리고는 어디로? 하다 생각난 게 운길산 수종사였다. 운길산 역에 도착하고 그 길로 산길을 걸었다.

 

 

수종사 경내는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다. 아주머니 한 분이 마당을 빗질하고 있었고, 고양이 두 마리가 아주머니 빗질 사이를 앙증맞게 오가고 있었다. 저 아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몰머리의 강물은 회색 빛이다. 강에 연해 달리고 있는 겨울산들은 암회색이다. 짙고 옅은 회색으로 어우러진 강과 산에 어느 순간 빛이 내려 스며들고 있다. 희뿌연 하늘 구름사이로 서서이 뜨고있는 연한 황금색의 해다. 해는 문득 충동을 안긴다. 뭔가에 매달리고 싶어졌다. 엷은 아침햇살은 대웅전 앞에도 내려앉으며 아른거리고 있었다.

 

 

발길은 나도 모르게 다시 대웅전 쪽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지로 된 쪽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굳이 손으로 문을 열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아까처럼 가까이 다가가 댓돌에 선 자세로 그냥 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가가는데 문이 움직인다.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문은 내가 다가가 열기 전에 스스로 몇 번을 여닫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활짝 열었다. 그 사이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렸다. 바시시 바시시. 문이 열려지는 소리, 그러나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어서 오거라, 어서 오거라. 그 짦은 순간 어떤 느낌이 강하게 일었다. 나는 다시 두 손을 모았다. 모은 두 손에 고개를 깊이 파묻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통도사에 계시던 鏡峰스님은 열반하기전, 그를 따르던 侍者가, 스님 떠나고 보고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한 대답은 이랬다.

"한밤중 三更이 되거든 통도사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

집으로 오는 길에 경봉스님의 이 말이 왜 머리 속을 그렇게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이름하여 수종사 卽發佛心이련가. (2015. 1. 2)

 

 

 

 

몇년 전인가, 매년 신년이면 한 며칠 간 새벽부터 잘 돌아다니던 적이 있었다. 북한산도 가고, 수도권에 있는 산들에도 새벽에 자주 갔다. 몸이 그런대로 움직일 만할 적의 얘기다. 그건 말하자면 몸이 따라주었다는 얘기도 되겠다. 몸이 따라줬다는 건 생각에 따른 움직일 것인데, 돌이켜보면 2014년, 15년은 정신적으로 무척 피폐해있을 때다. 우환이 많았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얘기할 그런 우환이 아니었다. 그저 나홀로 마음을 절이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그런 우환이었다. 그런 질곡의 시간이었으니 새벽잠이 있을 리가 없다. 몇 날을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다반사였다. 그런 지경에서도 새벽이면 정신이 혼돈스러움 속에서도 뭔가를 찾아보고자 하는 갈구심 같은 게 깃들여져 나를 그냥 그대로 두지를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새벽부터 이리저리 나돌아 다녔던 것이다. 2015년 오늘, 그러니까 1월 2일 나는 양평의 운길산 수종사를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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