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네스트 보그나인(Ernest Borgnine)의 追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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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사람)

어네스트 보그나인(Ernest Borgnine)의 追憶

by stingo 2023. 1. 25.



추억의 헐리웃 스타 어네스트 보그나인(Ernest Borgnine; 1917-2012). 어제 오늘 그에 관한 글과 사진이 많이 뜨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어제 24일이 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본 외국영화들 가운데 기억에 남아있는 보그나인 나오는 영화가 한편 있다. 제목은 모르겠는데, 예수를 주제로 한 영화에 죄수로 나오는 보그나인이었는데, 그의 연기와 동네 성깔있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그때 이후로 보그나인을 좋아했다.



보그나인에 얽힌 한 얘기가 있다. 1977년 1월부터 7월까지 마산에 한 6개월 있을 적에 당시 반공연맹 마산분실장으로 있던 공 모 씨, 이 분이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쏙 빼 닮았다. 그래서 그 분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내가 ‘보그나인’이라는 별명을 달아드렸더니, 보그나인을 잘 모르면서도 영어이름이라는 것이어서 그런지 흡족해 했다.

나는 당시 거기 신문사 견습기자로 있으면서 만나게 된 안 모씨라는 기획실장을 ‘모시고’ 다녔다. 이 분은 남로당 출신이라는 전력 때문에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고있던 관계로 언행에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 정보나 보안당국자들의 눈치를 잘 살피면서 마음에도 없는 연기같은 행동을 하기 일쑤였고, 나는 혹간 그 분이 술 취기 등으로 인해 실수를 할 적에 ‘처리’내지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어느 날 오후 반공연맹 공 실장 등과 어우러진 술 자리였다. 공 실장은 검은 찝차를 타고 왔는데, 권총을 차고 다닌다던 소문이 돌던 시절이었다. 낮부터 마셔 취기가 올라있던 안 실장이 이런 저런 두서도 없는 말을 하면서 갑자기 언성을 높혀 ‘이스크라! 이스크라!’라는 말을 했다. 그 말 뜻을 모르던 공 실장이 “무슨 소리야?“하고 물었을 때, 주제넘게 내가 나서 설명을 한 게 화근이었다.

나 또한 술에 취해있었던데다, 공 실장과 그 수행원들의 거의 행패에 가까운 언행에 화가 나 있던 차였다. ”이스크라, 그 말은 러시아 어로 ‘불꽃’이요. 레닌이 공산당을 하면서 당 기관지 제호로 쓴 게 바로 그 이스크라요, 알겄소!“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는 안 실장과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고, 술판은 싸늘하게 식어갔고, 급기야 그로인해 험악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 실장이 안 실장의 뺨을 살살 어루 만지면서 조롱하듯 했다. 이런 투의 말도 나왔다. 빨갱이 말을 하다니,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운운. 그걸 보고 내가 대들었다. 그런 와중에 공 실장 운전기사가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치려했고, 나는 그런 그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술자리가 난장판이 됐다.

그 순간 갑자기 눈에 별이 번쩍 튀었다. 누가 나의 뺨을 세차게 내려친 것인데, 누구였을까고 보니 내 곁의 안 실장이었다. 자기 편을 들어준 나의 뺨을 안 실장이 때렸다는 게 나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어 따지듯이 달겨들다가 한 대 더 맞았는데, 안 실장은 “왜 버릇없이 구는가”면서 오히려 공 실장 측을 감쌌다.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폭력을 행사하려한 운전기사를 밖으로 불러내 뭔가 앙갚음을 하고자 했는데, 나의 그런 의중을 알았는지 그 운전기사도 일어섰다. 둘은 술집 바깥 장군천에서 한판 붙었고…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억에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닮은 공 실장에 대한 인상이 그리 나쁜 것으로만 각인돼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6개월 견습도 마치기 전에 서울로 간다는 걸 알고, 그 술집, 그러니까 옛 월남다리 아래 ‘화신순대국 집’에서 송별연을 열어주기도 했던 분이다.



몇년 전까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마산의 조남륭 형의 창동 ‘만초옥’을 마산에 내려갈 적마다 들리곤 했다. 어느 날, 남륭 형과 옛 얘기를 나누다가 보그나인, 그러니까 공 실장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보그나인, 아니 공 실장이 90이 넘은 연세로 함안 칠원 쪽에 사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형이 수첩을 디지더니 전화를 건다. 공 실장에게 거는 전화였다. 하지만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그때 공 실장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게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지금은 아마 작고하셨을 것이다.




다시 어네스트 보그나인으로 돌아가, 내가 보그나인이 나오는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1970년 겨울이 아닌가 싶다. 그때 단성사에서 상영 중이던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에서 더치 역으로 나오는 보그나인을 본 것이다. 그때 보그나인과 함께 윌리언 홀든이 나오는 그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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