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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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n(馬山)

馬山에서…

by stingo 2024. 6. 13.

마산 창동 옛 시민극장 아래에 '도시재생이야기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오늘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시내를 걷다가 발을 멈춘 곳이다. 여기에 먼저 걸음이 멈춘 곳은 아니다.
그 건물 옆에 '3.15의거동지회'라는 간판이 붙어져 있는 걸 보고 기웃거리다가 바로 위 이 건물을 본 것이다.
'3.15의거동지회'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곳은 한 양복점이었다. 나는 그 간판을 보고 '3.15학생동지회'라는 단체를 떠올렸다.
마산 3.15의거 당시 학생시위 참여자들끼리 만든 단체인데, 나는 '3.15의거동지회'가 그 단체일거니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 나는 아침에 3.15의거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과거사정리진실화해위원회’를 갔었다. 나름 어떤 목적이 있었다.
3.15의거에 있어 학생시위에 관한 보다 좀 정확한 얘기를 듣고 싶었고, 지금 그에 관한 기록에 대한 위원회 측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이같은 나의 목적에는 지금까지의 그에 관한 기록이 뭔가 좀 잘못되고 있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를테면 김주열의 처참한 시신이 발견된 4월 12일 밤2차 마산봉기가 일어난 후 고교생들의 시위가 어떻게, 누구의 주도로 전개된 것인가에 관한 기록에 관한 것이다.
나는 물론 어떤 분의, 지금까지의 기록과 상반되는 증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 담당 여직원의 대답은 지극히 원론적인 것이었다. 이런 저런 주장들을 다 듣고 그것들을 검증하고 확인한 후에 사실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저런 주장들에 대한 그런 작업이 쉽지않은 상태에서 누구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미적지근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었기에 갖고있던 기대가 한편에서 허물어지는 느낌을 갖고 위원회를 나온 터였다.
그리고는 마산 시내를 한참을 걸어다닌 것이다.

마침 그 간판이 달려있는 양복점 앞에 나이가 듬직한 영감님 한 분이 서 계셨는데, 양복점 주인인듯 했다.
나는 그 분이 동지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듯 보여 물어보았다. '3.15의가동지회'가 여기(양복점)입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쓴웃음을 지으시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지회는 건물 2층인데, 오래 전부터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동지회라는건 간판이건 사무실이건 그저 말만 그렇고 아무도 없는 유명무실한 곳이라는 걸 은연 중에 시사하고 있는듯한 말투였다.



나는 그 분의 대답을 들으면서 학생동지회라는 게 결국 의거동지회와 같은 단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15학생동지회'를 나는 그동안 좀 찾아 보았다. 그러나 연락을 할만한 전화번호라든지 사무실은 없었다.
다만 회장이라는 분의 성함과 휴대전화 번호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의거동지회나 학생동지회는 이름만 좀 다를 뿐 같은 단체라는 것이고,
지금은 그 명칭만 남아있는 유명무실한 곳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별로 좋질 않았다.

그래서 좀 씁쓸해진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 옆의 '도시재생얘기센터'라는 건물을 본 것이다.
'도시재생얘기센터'의 문은 잠겨져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살짝 밀어보니 열려졌다. 그 안 쪽은 다소 좀 컴컴했다.
나는 살짜기 그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좀 거리낌없이 이 건물에 들어온 것은 몇년 전인가, 여기에 한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창동문화예술촌을 비롯해 창동을 포함한 옛 마산의 도시재생 일을 맡고있던 성호국민학교 김경연 후배가 사무실로 근무하던 곳이 여기였고,
그래서 그런 조그마한 연고가 있었던 것이다. 컴컴한 사무실은 이내 눈에 차차 어슴푸레하게 그 분위기를 보여줬는데,
안쪽의 직원 데스크와 테이블이 달린 앉을 자리들이 놓여있는 단촐한 분위기였다.




마침 마산은 이날이 제일 더웠다. 오랫 동안 걸었던 나는 더위와 걸음에 지쳐 있었기에 우선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한가지를 빼먹었다. 사무실은 시원했다.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컴컴한 사무실에서 편안스런 자세로 앉아 피곤한 몸을 추스리고 있을 때
내가 들어왔던 사무실의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바깥은 옛날 같으면 '학문당' 서점이 자리잡고 있을 터였는데,
그것은 흡사 흑백필름의 사진 같이 흐릿하게 보였다. 안이 컴컴하니 바깥은 환한 느낌이 훨씬 강해져 보였는데,
그래서일까 뭔가 마산의 지나간 옛 모습을 어렴풋하게 옛 흑백영화처럼 돌려주고 있고 나는 그것을 영화를 보듯 바라보고 있는 그런 착각을 안기게 했다.




문득 나는 뭔가 안온한 느낌을 받으면서 그냥 언제까지 이대로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어떤 여자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는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좀 있다 다시 나왔다. 지나치는 그 여자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좀 앉아 있어도 됩니까. 그 여자 분은 나를 보며 흐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든지 앉았다 가이소...







#마산#3.15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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