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면(洪承勉) 선생의 <미식가 수첩>과 한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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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면(洪承勉) 선생의 <미식가 수첩>과 한 해프닝

by stingo 2024. 8. 3.

오늘 도서관에 책을 보러 오지는 않았다. 쓸 글 때문에 왔는데, 점심 먹고 휴식을 취하는 어느 자리에서 앞 의자에 놓여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읽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판단했기에 책에 손을 댈 수는 없었지만, 나는 문득 그 책이 보고 싶어졌다. <미식가의 수첩>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책 제목도 그렇지만, 책을 쓴 필자에 나는 더 관심이 갔다.




홍승면. 홍승면이라면, 예전 196, 70년대에 한국.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으로 활동한 언론인 홍승면(洪承勉; 1927-1983)선생이 아닌가 해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문을 두드리던 그 시기, 홍 선생은 글 좋기로 정평이 나있던 분이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선생이 언론인 시절 썼던 글을 모은 칼럼집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았던 책으로, 나는 아직도 집에서 한번 씩 꺼내 읽어보곤 한다. 선생은 정치와 사회문화 일반의 글을 많이 썼는데, 이밖에도 생활과 풍속 등에 관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감높은 글들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분이고, 특히 음식과 맛에 관한 글로써는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1세대로 꼽혀지는 시쳇말로 맛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식가의 수첩>이 선생의 책이라면, 분명 선생의 맛에 관한 지난 시절의 글들을 집대성해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그 책을 한번 뒤적여 보고싶은 충동감에 사로잡혀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보는 사람이 오기를 좀 오래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오질않고 있었다. 결국 나는 기다리다 못해 그 책을 뒤적여 보았다. 맞았다. 내 생각대로 그 책은 선생의 맛에 관한 글을 모아 펴낸 책이었고, 묵직한 책의 무게 만큼 재미있는 선생의 글로 가득 차있을 것 같은 황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책의 이름을 까먹지 않고 메모했다. 오늘은 보기가 어려울 것이니, 내일 와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 자리로 와서 하던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꽤 흘렀다. 화장실을 가려 책이 놓여있던 자리를 지나는데, 그 책은 여전히 그 의자에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책을 신청해 보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대여섯 시간 가량 그 책은 그 자리에 홀로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가 그 책을 또 한번 뒤적이다 눈에 들어오는 어떤 글의 제목에 이끌리어 계속 그 책을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이면 책을 보던 사람은 오겠지 했는데, 종무소식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책을 신청해 읽던 사람이 계속 오질 않는데, 아마도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책을 까먹고 이미 도서관을 나갔을 수도 있겠다는 것, 그러면 누군가 이 책을 대출창고에 가져다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나의 생각 속에는 만일 이 책이 이런 식으로 해서 만남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가 내일 와서 보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도 일부 있었다. 그래서 그러면 내가 대출창구에 상황얘기를 하고 대리로라도 반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마침 내가 하던 일의 오늘 부분은 끝낸 상태였기에 도서관을 나갈 차비를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일단 내 자리로 가 소지품을 챙긴 후 나오면서 대출창고에 반납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 책을 들고 내 자리로 가려 열람실을 들어가는 중이었다. 내가 열람실 출입대를 통과하려는데, 갑자기 경고등이 크게 울렸다. 그 소리에 내가 놀라 주변을 살펴보는데, 다른 특이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경고등은 나 때문에 울린 것이었다. 내가 다시 출입대를 거쳐 밖으로 나오니 더 이상 경고등은 울리지 않았다. 그 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조금 있으려니 도서관 여직원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내가 그 책을 들고있었기에 내 앞으로 왔다. 그 책은 장서고에 있는 책이 아니가 도서관에 진열되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 책이 일반열람실로 들어가게 되면 경고등이 올리도록 돼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들고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여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책을 보고자 신청했던 사람이 없으니 내가 대신 반납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직원은 그 책은 장서고에 책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 놓여있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면서도 넓은 도서관에 거기가 어딘지를 모르니, 그냥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놓아두면 나중에 도서관 폐관시 정리하면서 제 자리를 찾을 수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여직원의 말에 다시 그 책을 들고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놓아 두었다. 나는 시키는대로 책을 그 자리에 두면서 오로지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내가 내일 이 책을 찾아 보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기를 바라는...





#홍승면#미식가의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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