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rectiveness, 혹은 correctness - 정확하고 올바르다는,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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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veness, 혹은 correctness - 정확하고 올바르다는, 그러나…

by stingo 2024. 12. 28.

‘정확함‘ ‘올바름’을 뜻하는 영어단어로 나는 이제까지 correctiveness로 알고 있었는데, correctness로 쓰는 게 맞다고 하네.
검색을 해보니 correctiveness는 아예 영어단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고 있는데,
내가 예전에 쓸 적에는, 이를테면 political correctiveness 등 분명 correctiveness 였다.
애용하는 번역앱 ‘DeepL‘에는 이 단어와 correctness 두 개 모두 같은 내용으로 번역이 된다.

엊저녁부터 이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던 건,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겪었던 어떤 일 때문이다.
어떤 중년부부가 3호선 대화역 쪽 열차를 기다리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나랑 같이 교대역 쪽부터 같이 타 맞은 편에서들 앉아 왔었기에 잘 안다.
그러다 갑자기 남자가 내 앞에서 뒤로 슬로비디오 장면처럼 넘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미처 붙들 겨를도 없이 그 남자는 그대로 숨 넘어가듯 뒤로 넘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마침 그 뒤에 어떤 아주머니가 서 있었는데,
그 남자가 넘어지면서 그 아주머니의 가슴팍에 뒷머리를 쳐박고는 넘어졌다.
동시에 그 아주머니도 뒤로 넘어졌는데,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가 바닥에 부닥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컸다.
그러니까 그 남자의 머리를 그 아주머니 가슴팍이 완충 역할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넘어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 남자는 넘어지기는 했지만 멀쩡한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 즉시 아주머니에게 달려가 팔을 붙들며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몇몇도 함께 아주머니를 일으키려 했다.
그 사이 그 남자와 함께 있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그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는 옷을 털어주며 괜찮냐고 물으면서도
남자의 술취한 주기를 타박하는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를 겨우 일으켜 세우고는 계단에 앉혔다. 아주머니는 다행히 머리 쪽은 이상이 없는듯 했지만,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함께 팔다리가 아프다며 신음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 사이 중년부부도 곁에서 그 아주머니 동태를 살펴보는듯 했다.
남자는 자기가 쓰러진 줄 조차도 모르고 있는듯 하는게 보기가 역겨워 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이 뒤로 발랑 넘어지면서 저 아주머니 가슴을 치고 넘어졌다. 그러니 저 아주머니를 좀 보살펴라.”
그랬더니 남자는 여자와 함께 멈칫멈칫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하는데,
듣기로 “나 때문에 넘어진 거요?”라며 따져 묻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목격자들도 많았었기에
주변에서 그 중년부부를 책망하는듯한 말들이 나왔다. 나는 그 부부에게 빨리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남자의 부인은 그래도 뭔가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응했다. 오히려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내가 지금 심장이 두근거려 죽겠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남자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아주머니도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가 그 부부에게 하는 얘기와 주변 시선들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는 그 여자에게 따져들기 시작했다.

조금 후 대화역으로 가는 3호선 열차가 도착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저 여자를 놓치지 말고 함께 열차를 타라고 했고,
아주머니는 그 여자와 함께 열차를 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 때부터 그 여자는 자기는 그 남자와는 모르는 사이라며,
자기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그런 입장을 강하게 나타내자 아주머니도 그 기세에 눌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그 여자에게 한마디 했다.
”둘이 부부라는 걸 내가 잘 안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교대역에서부터 타고 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와서 남편을 빼돌리고 그러는 것 아니냐. 그러면 안 된다.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내 이 말에 그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머니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는 사고당한 얘기를 하면서 어디 어디 역으로 오라고 했고,
그 여자에게는 빨리 남편을 찾아내라고 다그쳤다. 둘은 행선지가 화정역 같은 곳이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더욱 의존하려 했다. 나는 화정보다 한 정거장 더 가는 대곡역이라고 하면서 더 도와주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에게 화정에서 함께 내릴 적에 단단히 잡고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화정에 내리면 병원을 가는 게 좋겠지만,
시간 상 어려우니 최소한 연락처로도 받아놓으라고 했다. 둘은 화정역에 내렸다. 내릴 때 아주머니는 그 여자 옷을 잡고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난 후 내 머리 속에 자꾸 ‘올바름’이라는 뜻의 correctiveness라는 단어가 맴도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그 단어는 틀린 것이고 correctness가 올바른 것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나는 자꾸 correctiveness가 나에게는익숙한 것으로 머리 속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correctiveness 이 단어가 자꾸 머리 속을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전철역에서 한 일이 올바르고 옳은 일이어서 그랬다는 것일까.
할 짓을 하기는 했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바른 일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한 일이 correctiveness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헷갈린다. 바르고 옳은 일을 했다면 그것보다는 good이라는 단어가 맞을 것인데,
correctiveness는 아무래도 계산 상에 있어 정확하게 맞는다는 측면에서의 ‘올바름’ 쪽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그럼 내가 한 일이 good 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없잖아 있다. 그 아주머니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취한 남자의 부인되는 그 여자 쪽에서 보면 나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이른 저녁부터 술에 취한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남편이 저지른 일로 인해 내가 왜 곤경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는가 하고 따져든다면,
어찌 보아 그 여자 분도 피해자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correctiveness가 그 일로 인해 떠올랐던 것은, 그런 엇갈림 속에서 일을 바르고 정확하게 했다는 것과
말 그대로 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good한, 좋고 옳은 일을 했는가를 놓고
나 또한 헷갈려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correct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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