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입맛도 시원찮다.
그저 세끼 밥만 잘 챙겨먹어도 그게 어딘가고 스스로 여길 때가 많다.
그렇지만 가끔씩 주전부리가 당겨질 때도 있다.
주전부리야 뭐 별게 있겠는가.
제 철에 나오는, 이를테면 시방이 여름이니 옥수수 정도를 갖고 입에서 우물거린다.
어쩌다 달콤한 게 먹고 싶을 때면 초코파이 같은 것 하나 먹는 정도다.
물론 먹고싶은 게 있기는 있다.
어릴 적부터 입에 당겨지던 것인데, 예컨대 말린 홍합이니 오징어같은 것들이다.
어쩌다 마른 오징어를 먹기도 하는데, 그건 정말 언감생심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이빨 때문이다. 그 맛에 호기를 부리며 먹다가 이빨로 낭패를 당한 경우가 허다하다.
말린 홍합, 그러니까 건홍합은 맛도 좋고 먹기도 좋은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동네시장 건어물전에 가끔씩 나오기도 하는데,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경동시장엘 어쩌다 한번 가면 좋은 건홍합을 만날 때가 있다.
가게가 아니고 저자거리에 수레에 놓고 파는데,
그걸 언제 한번 사 먹었더니 내 입에 딱 맞는, 예전에 먹던 그 맛의 건홍합이었다.
나로서는 몇달 전 그걸 처음 사 먹었을 때, 마치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반가웠다.
그런데 그걸 파는 아줌마가 시장에 나오는 게 일정하지가 않다.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것이다.
지난 달, 그게 하도 먹고싶어 경동시장엘 갔더니 그 아줌마가 나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시장 안 어떤 건어물 가게에서 파는,
주인 말로는 목포산이라는 걸 사서 먹었는데 영 그 맛이 아니었다.
그 후로 생각은 간절했지만, 집에서 먼 경동시장 가기도 쉽지않고
또 내 입에 맞는다고 챙기는 그런 '好事'가 나에겐 가당찮은 게 아니구나고 여기며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실하고 맛있는 건홍합이 어제 갑자기 많이 생겼다.
아주 이상한 실마리로 생긴 것인데, 사연은 이러하다.
며칠 전 어머니 생신 때문에 대구에 내려갔다, 다음 날 막내 여동생 차를 이용해 올라오는 길이었다.
여동생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건홍합이 불쑥 나왔다.
여동생이 나더러 좋아하는 간식이 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홍합을 얘기했고, 그것과 경동시장과의 저간을 시시콜콜 털어 놓았다.
그 얘기를 듣던 여동생이 그랬다.
오빠, 좋은 건홍합을 파는 통영의 건어물전을 잘 안다. 그 집 것을 부쳐줄 게. 멸치하고.
막내 여동생은 나에게 잘 한다. 맛 있는 것도 사주고 가끔 용돈도 준다.
나로서는 여동생의 그 얘기에 솔깃했지만, 드러내놓고 그러라 하기엔 염치가 느껴져
그저 그러려니 하고 그냥 흘려 들었다.
어제 집에 있는데, 택배회사에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통영에서 부친 그 무엇이 언제 쯤 우리 집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동생이 나에게 얘기한 통영의 그 건홍합과 건멸치였다.
양도 많았다. 홍합과 멀치가 각 2kg 씩이다. 내 여동생도 나만큼 성미가 급한 줄 비로소 알았다.
여동생은 나에게 그 말을 한 후 산본 저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통영에 주문해 부치도록 한 것이다.
건홍합은 알이 실하고 마츠막게 말려진 것이었다.
한 개를 집어 먹었더니 짭쪼롬한 게 통영바다 맛이 입안에 그윽하게 차는 느낌이었다.
은빛의 마른 멸치도 튼실하고 깨끗하게 잘 말려진 것이 짭쪼롬하고 고소했다.
여동생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했더니 이런다.
오빠, 인자 소주 좀 그만 마시고 홍합으로 심심한 입이나 달래이소.
말이 되질 않는다. 말린 홍합만한 소주 안주가 어디 있을까.
그저 이래이래 살아가는 나도 내가 생각하기에 참 우습다. 구차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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