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뭘 잘 잃어먹는다.
알고서 그러질 않으니 부지불식이다.
그러면서 그냥 그러려니하고 체념한다.
어제도 뭘 잃어먹었다. 그런데 그냥 체념이 안 된다.
나로서는 참 기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산에서 내려와 친구들과 '삼각산'에 앉았다.
나는 자리를 잡은 후 땀에 절은 모자와 수건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생각 중이었다.
화장실에서 씻은 후 수건을 그냥 앉은 자리에서 말릴까,
아니면 그냥 배낭에 넣어 버릴까를 궁리 중이다가 친구들이 연이어 화장실로 가는 걸 보고
그냥 배낭에 모자와 수건을 집어 넣었다.
종업원이 우리들 자리가 마땅찮다며 좋은 자리로 옮기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옮긴 자리에서 문득 모자와 수건 생각이 나 배낭을 열어 보았더니, 그것들이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샅샅이 뒤졌으나 없었다.
원래 자리에 떨구고 온 게 아닌가 싶어 그 자리로 가도 없었다.
하도 이상해 친구들에게 그 애길했더니,
내가 원래부터 모자를 쓰지 않았고 수건도 갖고있질 않다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
나는 물론 그렇지 않다며 친구들의 그 말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친구들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도 자꾸 모자와 수건 생각이 나
배낭을 몇번이고 열어보곤 했다.
잘 아는 가게 종업원에게도 물론 그 얘기를 했고,
그 분은 나름 내 원래 자리와 그 주변, 심지어 화장실까지 가서 찾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줬다.
하지만 모자와 수건은 어디에고 없었다.
오늘 아침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배낭을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아침까지도 무엇에 홀린 기분이다.
기이한 일은 또 있다.
친구들과 '삼각산'을 나와 맥주 입가심하러 갔는데, 그 부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맥주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헤어진 것만 생각이 날 뿐,
잘 알고지내는 맥주집 사장 선배와 오랜만에 만난 것을 포함해
친구들과 맥주집에서 무슨 얘길 나누고 어떡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술 탓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제는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들의 죽음 등 무거운 얘기들을 친구들과 나눴었기에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정말 모를 일이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SNS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이런 조언을 해줍니다.
聖 안토니오(Saint Anthony)에게 매달려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래라도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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