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이 사진의 뒤를 보니 1996년에 찍힌 것으로 돼 있다. 외국 순방 후 전용기 안에서다.
김영삼 대통령이 비행기 안을 돌며 수행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모두들 녹초가 됐다. 순방 일정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YS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조금 비상식적인 측면이 있다. 남 눈치보지 않고 밀어 부치는 스타일이다.
보통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방법인데, 이럴 경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피곤하다.
외국 순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YS의 스타일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일정도 그렇지만, YS는 종종 이를 무시하기도 한다. 강행군에 엑스트라가 더 해진다는 얘기다.
1993년 11월 첫 미국 순방 때를 회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수행원 및 기자단이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모두 녹초가 됐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기자단이 비서실장에게 건의를 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좀 쉬며 일박을 하고 가자.
물론 이는 일정에 없던 것이다.
비서실장이 YS에게 건의를 했다가 한방에 거절 당했다.
"뭐라 카노. 돈 드는 것은 생각 안 하나?"
이 사진 속 YS의 모습도 어째 좀 지쳐보이지 않은가. 그래도 얼굴은 좋다.
새삼 다시 보니 인자하면서도 건강해 보인다.
이 사진은 D일보의 K선배가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을 보니 생각난다.
K선배는 귀국 후 이 사진을 전해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제일 오만(?)해 보였다.
이 무슨 말인가. 통상 대통령과 악수를 나눌 때는 고개를 숙이는 게 예의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좀 크게 뽑아 준다고 했다.
사진을 다시 보니 그렇기도 하다. 당시의 나도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피곤에 절어 정신이 풀풀 날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다보니 저런 형상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오늘 22일이 YS가 서거한지 7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 현대사의 한 축을 맡아 노고가 많았던 분이다.
새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II)
오래 전의 일이다. 신문사 창간에 즈음해 대통령과 회견을 한 차례 가졌다.
바짝 긴장을 한 상태에서 사장과 편집국장을 소개한 후 자리에 앉았다.
서면으로 답변을 받아놓았기에 차담 형식의 의례적인 회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는 물론 안면이 있다.
앉자마자 대통령이 갑자기 나에게 지극히 사적인 걸 물었다. 좌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어 거의 '군대식' 답변을 했다.
그런데 자꾸 묻는다. 자꾸자꾸 그런 식으로 답변하는 것도 어색해 나도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정해진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않을 수야 없지 않은가.
회견이 끝나고 나오면서 공보수석이 각하와는 어떤 사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얼버무렸는지 기억에 없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은 나의 마산중학교 동기친구의 외삼촌이면서 마산과는 여러모로 연고가 깊다.
대통령 맏딸이 우리랑 동기 정도 되는데,
이화여고 다닐 적 언젠가 방학 때 마산에 내려왔을 때 친구랑 함께 만난 기억도 있다.
서울서 대학 다닐 때는 YS 상도동 집에 살던 친구 만나러 몇 번 가보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YS와 사담을 나눌 정도는 결코 아니었기에 그날 회견이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늘이 YS 서거한지 7주기가 되는 날이다. 오늘이 YS 7주기라는 것도,
사실 SNS에 오늘따라 YS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왜 이리 많은가고 궁금해하다 알게된 것이다.
YS의 공과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많다. 하지만 어쨌든 YS는,
지난한 우리 현대사의 한 축을 맡아 노고가 많았던 한 분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삼 옷깃을 여미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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