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전 이상철 형의 신춘문예 당선 詩 ‘發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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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전 이상철 형의 신춘문예 당선 詩 ‘發見’

by stingo 2023. 5. 16.

어제, 아래 한 편의 시가 게재된 보도기사를 찾느라 오전을 다 보냈다.
1970년 그 해 마산의 경남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發見’으로 1월 1일자 7면에 게재되고 있다.
이 시를 쓴 작자는 나의 마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 해 선배인 이상철 형이다.
그 형이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원문기사를 애타게 찾고있다는 얘기를
아침에 누구로부터 들었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제호가 바뀐 경남신문 아는 기자에게 협조를 구했더니,
PDF 데이타베이스에서 하필이면 이 기사 파일만 유독 날라가버려 볼 수가 없었다.
두 해 후배로 마산의 근현대사에 달통한 전 경남대 김정대 교수에게 부탁을 했더니,
어렵고도 고맙게 국사편찬위원회의 데이타베이스를 이용해 찾아다 주었다.




지금부터 반세기를 넘긴 53년 전의 신문기사라는 것도 그렇고,
상철 형 청춘의 시절에 쓴 시라는 점에서 감회가 깊다.
활자가 작아 잘 읽고 요해하기가 쉽지않지만, 모더니즘적인 풍취가 느껴지는 시다.




당시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이 마산출신의 故 김용호(1912-1973) 선생이었다는 점도 반갑다.
우리들이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마산을 대표하는 시인이 김용호 선생이었지만,
타계하신지 오래 돼 잊고있었는데 오늘 53년 전 이 신문을 통해 선생을 대하고있는 게
마치 시공을 초월한 만남같은 느낌을 안긴다. 이즈음 검색으로 선생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사진은 더구나 찾을 수가 없다. 1970년이면 선생이 타계하기 3년 전인데,
부득이 이 사진을 통해 선생의 모습을 대할 수밖에 없다.




김용호 선생하면 생각나는 시가 가곡으로 유명한 김동진 작곡의 ’저 구름 흘러가는 곳‘과
조두남 작곡의 ‘또 한송이 나의 모란’이다. ‘또 한송이 나의 모란’은 역시 마산 출신의
이제하 선생이 글을 짓고 작곡한 ‘모란동백‘의 모티브가 되는 시와 노래로,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제하의 ‘모란동백’은 김용호 선생에 대한 오마주 노래가 되는 셈이다.

상철 형의 시 ’발견‘을 좀 명료하게 읽고 싶다고 형에게 청을 넣었더니, 시 전문을 보내왔다.


              發      見

                                         이상철


짙은 감성의 어둠이 내린다.
늘 씁쓸히 지내온 異邦에
화안한 기억의 잎들은 흩어진다.

억제의 갈등에 지친 지폐는
피곤한 생활의 잔속에
출렁이고
입술을 닦던 소매 끝은
시간의 부서짐을 듣던
밤의 아픔이었다.

아세틸렌으로 익은 어둠이여
흔들리는 생명의 부피 속으로
숱한 의식의 혼을 못질하고
손가락 마디마다
관능의 불이 필 때
사체의 내부를 분해하고 있었지     우리는.

사물의 투명한 그림자와
얼어붙은 행진의 4월휴식처에
잎 진 밤의 자유는
쓰러져 뒹굴고
찬 신앙의 거리 속에
뻗어난 숨결이 햇살보다
야윈 가슴을 찌를 때
권태로운 일상의 아침마다
내 예리한 흐느낌은
텅빈 심장의 사장에
이해의 칼을 번뜩이었다.

허나.
눈 녹는 도회
차가운 금속성의 고가도로엔
마지막 가쁜 외침이 퍼지고
뭉쳐진 어망의 올은
하나씩 풀려나
늙은 바다의 가동은 시작된다.

먼지 쌓인 뇌의 출구에서
겨울,
황량한 교회의 종은 울린다.




#이상철#발견#김용호#경남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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