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원고를 쓸 적에, 나로서는 쓰는 것과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그 원고를 중간 중간이든 아니면 완성본을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때 아이패드로 써서 PC에 저장하고, 또 USB 포트에 저장한다.
하나 더 있다. 또 다른 별도의 USB 포트를 마련해 거기에도 넣어 놓는다.
이렇게 해놓고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써놓은 원고가 만일 어떤 알 수 없는,
그리고 어떤 불가항력적인 경우로 몽땅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우려가 계속되니까 그럴 경우가 생기기 전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놓고 부심하는 게 버릇처럼 됐다.
책 출간을 앞두고 원고 수정작업을 하고 있다. 어제 도서관에서도 그 일을 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식은 땀 흘리는 경우를 당했다. 같은 내용인데, 프린팅 해놓은 원고와 USB포트에 저장된 게 서로 다른 것이다.
프린팅 된 원고에 있는 내용이 USB저장본에는 없는 것이다.
프린팅 원고 뒷부분이 USB에서는 통째로 빠져있기도 했고,
더욱 놀랄 일은 원고 중간 중간 내용의 표현이 서로 다른 것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USB에 빠지고 수정해야 할 원고 글을 체크해 새로 옮겨 쓰느라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
둘을 비교해 체크하지 않았더라면, 출판사에는 USB 포트에 저장된 원고를 보낼 계획이었으니,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불완전한 원고를 송고할 뻔한 것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겼을까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오늘도 그 생각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런 생각은 한다. 나이 탓이라는 것. 건망증은 그 한 증상인데,
어떤 일 사이 사이의 그 건망증의 텀(term)이 이제는 자꾸 좁혀지고 있다는 것에 연유되고 있는 것임을
어렴풋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조바심이 너무 심하다는 것도 문제다.
조바심이 지나치면 그 또한 어떤 일마다에서 너무 잘 챙기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 앞 일이 도외시되고 그럼으로써 기억에 혼선을 주는.
오늘도 집에서 나름 정리를 하느라 책상에 앉았는데,
잔뜩 흐린 바깥 풍경만 눈에 들어오고 머리는 자꾸 자꾸 멍청해져 가고있다.
어서 빨리 털어버리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원고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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