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카테고리의 글 목록 (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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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의 추억 2題 (緣木求魚) 이십여년 전 장마철 어느 여름날의 설악산 봉정암. 절에 무슨 행사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불공 들이려 온 불자들로 봉정암은 미어 터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네명. 친구 둘과 독일문화원에 계시던 독일인 한 분. 주지로 계시는 스님을 잘 알고있는 관계로 우리들은 운좋게 절 위 요사채 방 한칸에 기거할 수 있었다. 요사채에서 아래로 바라다뵈는 절의 인파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우리들의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비는 간간히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행장을 풀고 마루에 앉아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일인 벨쓰 씨가 나를 보고 눈짓을 한다. 방으로 들어와 보라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벨쓰 씨가 자기 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대용량의 위스키 한 병. 맥켈란18년산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2022. 2. 6.
‘작은 설날’ 2題 아내는 전을 열심히 부치고 있고, 나는 거실에 무료하게 앉았다. 슬쩍 가서 전을 하나 집어 먹는다. 막 부쳐진 동태전은 따끈하고 고소하니 맛있다. 하나로 양이 안 찬다. 또 하나. 아내가 내 그런 모습을 보더니, 말 없이 접시에 몇 개를 담아 먹으라며 준다. 그걸로 하날 먹었다. 그런데 맛이 별로다. 접시 전을 소쿠리에 붓고 다시 살며시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처음 하던대로 슬쩍 가서 하나를 또 집어 먹었다. 역시 그게 맛있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좀 의미심장하게 본다. 저 양반, 치매 끼가 왔나… 8년 전 작은 설날 저녁의 한 풍경. 예전에는 저랬다. 작은 설 저녁이면 모였다. ‘작은 설맞이’로 한 잔하는 것이다. 마산서 차례 모시러 올라오시는 석태 선배가 도착하는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2022. 1. 31.
아버지의 故鄕, 아화(阿火) "건천은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드는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에 구름" - 박목월, `산'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경산, 영천을 거쳐 경주로 갈라치면, 경주 조금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행정상으로는 예전에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돼 바뀌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윗 동네와 아.. 2021. 12. 22.
아르데코 풍 아날로그 '나쇼날 오븐(oven)' circa 1980s 1980년대 아날로그 식 오븐. 일견 좀 둔탁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당시로는 첨단인 기계식 타이머가 부착된 만능 조리기였다. ​ ​ ​ 저걸 꺼내놓고 보니 저 안에서 재잘거림이 들린다. 80년대 초 과천 살 적에 큰애, 작은 애 할 것없이 저 오븐으로 아내가 많은 걸 해 먹였고, "땡!" 하며 요리가 다 됐다는 시그널을 보내면 아이들이 손벽을 치곤 했다. 나는 그때 한창 인기를 끌던 피짜 맛에 끌려, 아내가 저것으로 피짜토스트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 ​ ​ ​ 어제 주방 정리를 하다 저게 나왔다. 아내는 낡고 오래된 것이니 버리자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애착이 갔다. 그 이유는 물론 있다. ​ 저 오븐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계셨던 어머니가 일시 귀국하면서 사들고 오셨던.. 2021. 10. 14.
반야월. 박시춘의 '雨中의 여인'의 추억 ‘우중의 여인.’ 1963년에 나온 노래이니, 이제는 우리 가요의 고전이 됐다. 이 노래에 관해 몇번을 썼고 많이 우려 먹었다. 하지만 아무튼 이 노래는 나의 최애의 흘러간 대중가요인 것이고 지금도 곧잘 흥얼거린다. ​ 그런데 며칠 전에 유뷰브를 통해 이 노래를 듣다가 나로서는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이 노래의 작사 및 작곡에 관한 것인데, 다른 분이 아니라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짓고 박시춘 선생이 곡을 붙였다는 것을 봤다. 지금껏 이 노래를 수없이 불렀는데, 작사와 작곡가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것을 안 것이다. ​ 반야월 작사에 박시춘 작곡이라, 그러면 나로서는 이 노래가 더욱 친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분 모두 이미 작고하셨지만, 반야월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의 따님.. 2021. 9. 29.
'風景畵'로 남아가는 秋夕 "생선 부쳤다. 조구와 민어는 좀 넉넉하게 넣었다. 제사 전이라도 좀 찌지고 끼리 무라. 그라고 돔배기 그 거는 함부로 손대지 마라. 내가 올라가서 하마." ​ 나에게 추석은 언제나 멀리 마산으로부터 왔다. 추석 한 일주일 전 쯤 마산 어머니로부터 생선 부쳤다는 전화가 그랬다.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지금은 물론 없다. 추석의 까마득한 한 기억일 뿐이다. ​ 덧붙인다면, 추석은 이제 나에겐 하나의 그림으로 남아가고 있다. 기억에 붙박이 처럼 붙어있는 일종의 정물화 같은 풍경의 그림이다. 냉장고 옆, 기대 앉을 수 있는 너른 벽 한켠에 어머니가 앉으셨다. 그 맞은 편은 제수 씨다. 그 옆으로 여동생들이 앉았다. 아내는 딱히 정해진 자리가 없이 부엌에서 왔다갔다 한다. 추석 전날 오손도손 가족들이 모여않아 음.. 2021. 9. 20.